로니 딩은 20년 동안 미국 기록영화계에서 뼈가 굵은 감독이자 제작자이다. 공영텔레비전인 에서 기록 영상물을 250편 이상 찍었다. 로니딩의 작품 중에는 <영광의 색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계 미국병사>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현재는 미국에 이민온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사를캐는 기획물 <미국의 조상들>을 제작하고 있다. 이번에 내한해서는‘방송기록영상물과 독립기록영화와의 차이점’이란 주제를 놓고 강연한다.
- 흔히 독립기록영화(Independent documentary film)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정의를 해본다면. 미국에선 독립기록영화가 어떤 경로로 대중에게 공개되는가.
= 미국의 독립영화는 창작자가 내용과 예산을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영화를 말한다. 창작의 자유가 있는 대신 예산은 좀 팍팍한 편이다. 미국에선 독립기록영화가 대중관객과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넓은 편이다. 주로 공중파 방송이나 케이블 방송을 통해 방영한다. 지방의 군소 영화제와 국제 영화제도 좋은 통로다. 대학과 박물관 부설 상영공간도 기록영화를 보급하는 데 유용하다.
- 미국 독립기록영화의 뿌리는.
= 30년대에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정부가 예술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정책을 폈다. 이 시절 미국 기록영화가 그 뿌리를 내렸다. 페어 로렌츠 감독의 <강>, <벌판을 가는 쟁기>와 같은 기록영화 걸작이 나온 것도 이 때다.
- 미국 기록영화의 갈래를 나눠본다면.
= 크게 봐서 두 범주가 있다. ‘진실영화’(공평무사한 객관성을 추구한다고 해서 ‘시네마 베리테, Cinema verite’라 부른다)와 ‘개인 기록영화’(Personal Documentary. 개인의 사적인 관심을 기록영화 양식에 담은 영화)가 그것이다. 개인 기록영화는 영화감독의 관점을 우선시 한다. 반면에 진실영화는 필름에 담는 현실의 재료들을 먼저 고려한다. 미국 최초의 진실영화는 59년 휴버트 험프리와 존 F. 케네디가 맞붙었던 민주당 대통령 예비선거모습을 담은 <예비선거>였다. 사건을 쫓아다니면서 거칠게 기록한 <예비선거>는 당시로선 새로운 양식이었다. 이 영화를 만든 알 메이슬즈, D.A. 페네베이커, 리차드 리콕, 리차드 드류는 그 이후에 60년대 미국 기록영화계를 이끌어 갔다. 이 사람들은 보도사진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영화로 진출했다.
- 당신은 독립운동하듯이 기록영화를 만들어왔는데.
= 70년대에 우리는 진실영화를 발전시킨 게릴라 TV운동을 폈다. 게릴라처럼 팀을 꾸려서 기동성 있게 현재 진행형의 사건을 좇는 것이다. 72년 리차드 닉슨과 조지 멕거번의 선거전도 이런 식으로 찍었다.
- 이번에 나온 미국 독립기록영화들을 보니까 여러해 걸쳐 찍은 작품도 꽤 많던데.
= 예산문제만 해결되면 그렇게 찍는 게 바람직하다. 기록영화가 더 깊어질 수 있다. 90년에 <아메리칸 드림>이란 영화로 아카데미 기록영화상을 받은 바바라 코플 감독이 대표적이다. 바바라는 주제를 담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쓴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제를 나타낼 만한 특별한 순간을 잡아내는 것이다.
- 후배 기록영화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새로운 기술을 여러 방법으로 응용할 수 있게끔 연구해야 한다. 기록영화는 만든 이의 관점을 담되 현재를 기록하고 과거를 끄집어내면서 사회를 비판하는 것. 창작자의 관심사를 표현하는 기록영화다운 영상과 소리의 짜임새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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