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큐멘터리 "보이지 않는 전쟁"을 연출한 이성규입니다
1년동안 인도의 비하르에 머물며 제작한 독립다큐멘터리 "보이지 않는 전쟁"의 2차상영이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초청으로 10월 1일 오후 3시 그리고 10월 2일 오후 5시 아트선재센터(3호선 안국역 1번출구)에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10년간 방송만 해왔었습니다. 그러던중 방송의 한계란 것에 고민하다 다큐멘터리를 한편 만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많은 관심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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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itle
"보이지 않는 전쟁" "The land of Invisible War"
-인도 비하르 리포트- -India Bihar Report-
2. 촬영, 구성, 연출
이성규 bihar21@yahoo.co.kr 017-281-8336
이승준 a_6mm@simmani.com 011-212-1936
3. 일시 10월 1일 오후 3시
10월 2일 오후 5시
4. 장소 : 아트 선재 센터 (3호선 안국역 1번출구)
5. 상영시간 : 90분
6. <타자로서 인도 바라보기> - 이승준
인도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거지가 많고, 정신과 철학이 풍부한 나라,
물질에 초연한 사람들,
거지에게도 넓고 깊은 삶의 안목이 있는 나라....
그래서 참 많은 젊은이들이 인도를 떠돈다.
인도에 처음 발을 디딘 게 지난 97년 5월.
나 역시 배낭여행객으로 인도가 줄 지 모르는
그 무언가를 기대하며 떠돌았지만 딱히 새로운 건 없었다.
다만, 반드시 한번 더 오겠다는 다짐만 했던 듯하다.
99년 봄의 기운이 돌 때 다시 인도를 찾았다.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디딘 인도는 시간이 갈수록 다르게 다가왔다.
한달 두달 세달이 흐르면서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익숙한 모습 이면에 흐르고 있는 아주 낯선 모습들....
'보이지 않는 전쟁'은 그 낯선 인도의 풍경에 대한 보고서다.
인도에서 한국으로 전화할 일이 여러번 있었다.
이런 아이템으로 촬영중이라는 얘기를 하면 백이면 백,
"인도에도 공산주의운동이 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우리도 처음엔 인도에서
공산주의 무장투쟁이 극심하고,
게릴라 집단이 있다는 얘기에 놀랐다.
그런 만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것에 가치를 느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취재와 촬영에 들어간 후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이 나타났다.
계급이라는 화두로만 접근하면
도대체 난해한 것 투성이였다.
바로 '카스트'라는 인도 고유의 신분제도가
그 안에 뿌리깊이 박혀 있었다.
인도가 익숙하다가 좌익무장운동의 존재로 인해 낯설어졌고,
카스트는 낯설지 않은데
카스트가 인도인들의 삶에 투영된 모습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현장에서의 1년은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의 다툼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 당신들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라는 한
현지 기자의 말에 동감한 건 취재 막바지에 이르러서였다.
타자로서 한 사회를 바라보고, 담아내고,
또 설명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인도처럼 아주 익숙하지만
들어갈수록 낯선 공간은 더욱 그러하다.
타자로서 바라본 인도의 한 현실이 90분에 담겨있다.
두렵다. 못한 얘기가 많은데....해야할 얘기도 남은 것 같은데....
그리고 뒤에 남겨진 그 현실은 여전히 진행중인데....
스쳐지나가던 아이들, 여인들의 무표정이 우울하다.
그 현실이 변화하는 데 적어도 50년이 걸릴 거라는
현지 기자의 말때문에 더욱 씁쓸하다.
결국 우리의 다큐멘터리는 우리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고,
그들은 그 현실에 익숙한 채 살아갈 뿐이다.
여전히 지독히 뜨거울 햇볕에 숨을 몰아 쉬며....
우린 역시 타자일 수밖에 없다.
a_6mm@simmani.com
7. <보이지 않는 전쟁> - 시놉시스
우린 외부인이 이해하기 힘든 한 현상속으로 들어간다.
그 곳은 우리에게 참 낯익은 곳이지만
아주 낯설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2000년 6월 7일
인도 동북부 비하르 주도 빠뜨나
인도 기자들의 리셉션 현장.
그곳에서 과연 비하르는 어떤 곳인가를 들어봤다.
그들은 하나같이 좋은 곳이라고 했지만
혹자는 부패한 정치와 사회구조를 얘기했고,
이 상황을 개선하는 데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비하르는 부처가 깨달음을 얻고 설법을 한 곳으로
불교도들에겐 성지다.
평화와 평등의 땅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의 흔적일 뿐
지금 비하르에서 불교도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비하르는 1억이 넘는 인구 가운데 80%가 농촌에 거주하고 있으며,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주로 인식되고 있다.
비하르의 평화로운 풍경들
그러나 그 풍경들 뒤엔 비극이 감춰져 있다.
지난 1997년 12월 비하르의 한 마을에서
58명의 불가촉천민(달리트)이 한 상층 카스트 사병조직에 의해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미 2년이 지났지만 긴장감은 여전하다.
1999년 1월 25일
상카비가 마을 21명의 불가촉 천민 학살현장.
1999년 3월 18일
세나리 마을 35명의 특정 상층 카스트 학살현장.
이 학살들은
좌익무장조직과 상층 카스트 사병조직이 저지른 일이다.
기본적으로 계급적인 갈등의 양상이지만 카스트라는
인도고유의 신분제도가 결합되면서
단순한 계급갈등만으로는 볼 수 없게 만든다.
현재 좌익무장조직은 토지를 둘러싼 투쟁을
상층 카스트를 상대로 벌이고 있고,
상층 카스트 사병조직은 좌익무장조직의 기반이 되는
가난한 불가촉천민들을 상대로 학살을 일삼는다.
상층 카스트, 달리트 모두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달리트, 불가촉천민.
그들의 대부분은 농업노동자로
열악한 경제수준하에 살아가고 있다.
물론 예전에 비해 '천하다'는 의식은 많이 바뀌었고
그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간혹 내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상층 카스트들은 그런 모습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비하르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상층 카스트 사병조직은,
스스로는 자신들의 보호를 위해 총을 들었다고 하지만
결국 무구한 사람들을 죽여왔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세나리 학살 1주년 사병조직의 분노는 두려울 정도로 강했고,
그들은 신문광고를 통해 학살을 하겠다고 할 정도로 대범했다.
좌익무장조직은 한 공개조직을 통해 그 모습을 잠깐 보게 된다.
전형적인 계급노선에 입각한 조직들로 생각됐다.
하지만 그들이 6명의 소수 부족을 학살한 사건이 발생.
이유는 좌익무장조직들간의 패권다툼이다.
군벌화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순수하게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집단만은 아닌 것이다.
취재도중 네팔국적의 경찰을 통해,
그들이 배치된 이유가 경찰도 카스트가 있기 때문에
같은 카스트 편을 들 위험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들은 카스트와 무관한 구르카 용병이다.
카스트는 의외로 견고했다.
취재중 우리에 대한 기사가 현지 신문 1면에 실렸고,
그 내용은 우리가 좌익들을 훈련시키려고 들어왔다는 것.
이후 그 잘못된 기사가 방해가 됐음은 물론이다.
미디어에 대해 극히 폐쇄적인
좌익무장조직이 장악했다는 지역으로 무조건 들어가본 결과
그곳은 의외로 평범하고 평화로운 마을임을 발견한다.
베트남처럼 누가 좌익무장조직원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곳이 한 좌익무장조직의 근거지임은
비하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그곳의 마을 사람들은 먼 곳에서 온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카스트와 계급과 정치적 계략이 뒤얽혀 비하르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선없는 전쟁은 눈에 띄지 않는다.
평화로운 마을, 그 뒤에 심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학살의 뿌리는 카스트다.
거기에 정치인들이 이러한 카스트간의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그 골은 더욱 더 깊어진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던 2000년 6월 9일,
일년동안 함께 취재에 동행했던 현지 기자들은
우리의 진지함에 고마워했지만,
정작 그 비극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르다.
학살 현장에서 만난 한 천민이 술에 취해
"너, 알긴 뭘 알아, 넌 찍어서 외국 가져 가면 그만 아냐?”
"너희들은 결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 쓰지 못할 것이다."라고
뱉아내던 말이 맴돈다.
취재를 마치고 인도를 떠난지 일주일 뒤
아우랑가바드에서 35명의 야다브 카스트(하층 카스트)가
상층카스트 사병조직에 의해 학살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비하르의 보이지 않는 전쟁은 진행중이다.
함께 동행 취재를 했던 인도인 기자는
비하르에서 벌어지는 카스트간의 갈등과 관련한 고백을 들려준다.
"나는 상층카스트이다.
이곳에서 난 카스트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만약 내가 천민들에게 땅을 나눠준다면
난 아마도 그 다음날 시체로 발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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