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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큐멘터리 <보이지 않는 전쟁> 시사회
번호 707 분류   일반 조회/추천 541  /  206
글쓴이 이성규    
작성일 2000년 09월 04일 04시 44분 18초
[보이지 않는 전쟁 - 인도 비하르 리포트]



날 짜 : 2000년 9월 23일 오후 4시 밤 11시 30분

장 소 : on line - www.trumong.com

off line - 서울 논현동(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공개하지 못하는 점 양해바랍니다. 메일을 주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그 이해할 수 없던 취재를 마치고 이제 시사회에 들어가며







2000년을 21세기의 시작으로 보는 계산법에 의하면 세기말인 99년과 그 전년도에 인권문제와 관련 중요한 사건이 세가지 있었다. 하나는 지난 98년 10월 17일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영국경찰에 의해 체포된 것, 둘은 99년 4월 지역의 분쟁에 인권의 기치를 들고 서방국가들이 개입을 했던 코소보사태, 셋은 역시 인권의 문제를 들어 국제사회가 개입한 동티모르가 그것이다.



그러나 피노체트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보석결정이 떨어졌으며, 신유고연방의 주류인 세르비아계가 알바니아계를 집단학살했다는 이유로 개입한 코소보전쟁은 이젠 거꾸로 알바니아계에 의한 세르비아계와 회교도들에 대한 학살과 테러로 가해자와 피해자만 바뀌어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조만간 다국적군에서 평화유지군으로 그 편제가 바뀔 예정인 동티모르의 정황도 얼마만큼 개선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21세기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차별과 학살이 없는 시대가 될 것인가?



아무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인권의 문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글은 인도 북부지방에서 발생한 대량학살과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신분차별을 취재하기 위해 작성한 취재 기획서다.



수천이 일방에 의해 학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상밖에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작년 7월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 우리는 이 다큐멘타리의 시사회를 앞두고 이 글을 공개한다. 참고로 인도의 비하르 지역에 관련된 글은 정창권씨의 [우리는 지금 인도로 간다](민서출판사)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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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인도로 갔는가?>



이 질문은 나 스스로에게 늘 확인하는 질문이기도 하면서도 동시에 주변사람들이 내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준비된 답은 간단하다.



이제는 더 이상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지 않았고 좀더 진지하게 접근해 보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인도에 가면 진지해 질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내가 인도를 선택한 것은 단 한가지이다. 한국에서의 제작비보다 그리고 그 어느 나라에 비해 장기적인 촬영을 하는데 있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다.



작년 4월 10일에 출국하여 인도에서의 초기엔 마더 테레사로 잘 알려진 마더하우스를 아이템으로 삼아 내 스스로 이를 체험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정확히 두 달 동안 일을 했었다. 이는 연출자면서 동시엔 카메라를 잡는 내가 캘커타 빈민들의 삶을 보다 정확히 이해한 뒤 촬영을 진행해야 한다는 신념에서였다. 그러나 두 달의 경험은 오히려 내게 회의만 안겨주었다. 그 회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겠다. 그 공허한 두 달 뒤 내가 찾아낸 아이템은 신분제도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 하고 있는 인도의 현실이었다.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천대받는 사람들... 이들의 현실을 파고들어 가던 중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만날 수 있었다. 마더하우스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한 집'에서 한 환자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길 들을 수 있게 됐고 그의 도움으로 몇 가지 자료와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사람은 작년 5월말 지병인 천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인도 신문과 잡지를 뒤진 끝에 인도에서 벌어 지는 비극 가운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인도만의 현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나는 지금 12개월의 취재를 마치고 2000년 6월 13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기획에 2개월, 취재에 12개월, 편집이 3개월 진행됐고 이제 시사회를 앞두고 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묻는다. 그렇게 오랫동안 촬영을 해야 할 이유가 있냐고... 당연한 질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 듯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또 다른 질문, '인도에서 정확히 어떤 내용을 촬영했나요?'

여기에 대한 대답을 위해 지금 기획서를 공개한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결코 나는 인도가 좋거나 혹은 남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신비하거나 높은 정신세계의 나라라서 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만난 인도는 '힌두교라는 교묘한 통치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가'이다.



나는 인도로 들어갔고 또 이 작업을 마치면 또 다시 들어갈 것이다.







"1년 동안 우린 타자로서 한 사회의 독특한 현상,

이해하기 힘든 현실과 함께 했다.

그러나 그곳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공간이 아니다.

인도는 우리에게 낯익은 공간이면서 너무나도 낯선 현실을 보여준다.

1999년 늦은 봄부터 2000년 이른 여름까지

우리는 인도의 한 지역에 살면서 그 곳의 독특한 사회현실에 주목해왔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에 대한 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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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이틀



"보이지 않는 전쟁"

-인도 비하르 리포트 R/T : 90min , Digital 6mm





2. 기획의도



"집단 학살은 어느 때, 어느 지역에서 발생하건 그 곳의 정치권이 물러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만, 비하르만은 예외였다."



- 時事週刊紙 99年5月5日



"이제 비하르는 더 이상 부디스트의 성스러운 땅이 아니다. 이 땅은 테러에 의한 잔혹행위의 반복으로 비극이 점철된 죽음의땅이다."



- 日刊紙 99年6月6日







가난한 땅,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하다고 알려진 비하르... 우리에겐 부처가 "위 없는 깨달음"-無上正覺을 얻어 Darma(法)을 펼쳤던 지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비하르는 佛敎徒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聖地로 꼽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비하르는 20세기를 마감하는 이 시기에 전근대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갈등으로 20세기 이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난으로 인해, 또 가난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 조직한 공산주의 계열의 게릴라와 봉건적 대지주들이 조직한 私兵들에 의해 자행되는 테러와 전투로 가난한 땅이 더욱 더 황폐화되어가고 있다.



부처의 땅, 비하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인도의 언론은 '죽음의 땅' '비극의 땅'이라 지칭하길 서슴치 않는가?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외신을 통해 서방에 알려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한 비하르의 悲劇을 장기취재를 통해, 게릴라전의 현장과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는 농민 반군의 심층부까지 접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주들의 私兵조직인 '란비르 세나(Ranvir Sena)' 및 문제 해결에 방관할 수 밖에 없는 인도 중앙정부와 비하르주정부의 미묘한 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현장에서 전하고자 한다.

비하르의 비극은 결코 '강 건너 불구경'식의 먼 나라 이야기 일 순 없다.우리가 지나온 19세기말 동학운동의 역사면서 동시에 8.15 해방 직후 펼쳐진 좌우익 갈등의 현장, 그리고 20세기 최초의 냉전의 폭발이었던 한국전쟁의 자화상이고 또한 70년대 산업화의 우울함과 희망이 교차되는 흑백사진의 흔적들이며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지역간 차별의 거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과거를 반추하며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기 위한 살아 있는 교과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비하르는 20세기에 마지막 남은 계급투쟁이면서 동시에 종교에 의한 신분투쟁의 마지막 현장이기 때문이다.





3. 20세기 비극의 땅, 비하르



지난 20세기는 산업화를 통한 획기적인 생산력의 발전과 아울러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해 가장 치열하게 싸워온 시간이었다. 자유를 얻기 위한 피와 땀 그리고 에너지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왕성하고 치열했다. 결국 많은 결실을 얻을 수 있었는데, 경제적 생산성의 제고, 계급과 계층 신분적 차별의 의 철폐가 바로 그 예이다. 이제 사람들은 21세기를 바라보며 이렇게 도달한 사회를 한 단계 더 끌어 올리기 위해 문화와 환경 종교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세기를 정리하는 지금, 20세기를 채 시작도 하지 않은 비극의 땅, 비하르.



비하르는 지금 힌두교에 의해 천민계급으로 규정된 달리트(Dalit)조직(공산 게릴라)과 지주(상층카스트)계급이 조직한 私兵集團(란비르 세나,Ranvir Sena)가 극단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적색과 백색의 무차별 테러로 정부에 의해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해도 지난 95년도 이후 500여명에 이른다. 실종자까지 포함한다면 비하르에서 펼쳐지는 계급간 갈등의 희생자는 약 2,500명에 이를 것으로 현지 언론은 집계하고 있다.



인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종교이다. 특히 '힌두교'는 지난 3,500년간 사회를 운용하는 원리로 '카스트'(Caste)란 독특한 신분제도를 만들어냈다. 비하르 비극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3,500년전부터 지배원리로 규정됐던 '카스트'는 상부구조에 의해 강력한 통치 이데올르기로 사용되어 왔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고착화되어 비합리적인 사회구조서 그리고 경제적 토대는 토지소유의 봉건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구조는 20세기의 지향점이었던 합리성 등의 가치에 반하는 사회질서일 뿐만 아니라 전근대적인 경제구조와 물질토대에 의존하게 함으로써 생산성 문제를 야기하기에 이른다. 즉 전근대적인 구조는 모든 인프라 구축의 지체란 결과를 가져왔고 이러한 결과는 또한 불합리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비극의 악순환 이라는 연결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결국 비극의 악순환은 종교의 신분제도에서 출발하는 경제적 정치적 모순으로 확대되어 극단적인 테러를 초래함으로써 이젠 내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우리에게 영화로 잘 알려진 80년대의 '벤디드 퀸'이 개인의 부조리한 삶에서 비롯되는 경제적 모순에 의한 일시적 봉기였던 것과는 달리, 비하르의 현 위기 상황은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모순에서 출발하는 조직적이고 항시적인 20세기의 마지막 계급투쟁의 현장이다.



현재 비하르의 전근대적인 사회의식과 인간관, 사회구성원리에서 비롯된 갈등과 투쟁, 또한 이로 인해 발생되는 비극의 역사와 현장을 통해 우리는 세기말의 시기에 20세기가 성취한 역사 이전의 현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비극의 땅, 비하르 리포트"는 20세기가 쟁취한 역사가 박제화 되기 전, 20세기가 극복해야했던 인류의 역사를 종교와 이데올르기로 얼룩진 극단적인 갈등과 투쟁의 형태로 인도의 비하르를 통해 생생하게 우리 앞에 제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역사의 소중한 가치에 대한 재경험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이 밖에도 佛敎徒에겐 聖地이지만 그 곳에서 삶의 터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결코 聖地일 수 없는 모순의 고리로서, 종교의 파생적 역설 관계를 고찰하는 話頭가 시청자들에게 던져질 것이다.





4. 제작기간



1) 기획 및 자료조사 : 99년 4월 25일 ∼ 6월 10일

2) 사 전 답 사 : 99년 6월 15일 ∼ 6월 30일

3) 컨 셉 작 성 : 99년 7월 2일 ∼ 7월 14일

4) 촬 영 : 99년 7월 18일 ∼ 2,000년 6월

5) 편 집 : 2000년 7월 ∼ 9월

6) 시 사 회 : off line - 2000년 9월 23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on line - 2000년 9월 23일 오후 4시, 밤 11시 30분

www.trumong.com





5. 제작방향



< 槪要 >



신분제도



복잡한 얼굴을 지닌 인도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카스트(Caste)'로 불려지는 신분제도이다. 카스트는 BC 1,500년전 아리안족들이 인도에 들어와 토착 세력과 융화해갈 때, 제사관급 신분을 지닌 토착 기득권에 자신들을 추가시키면서 고착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힌두교의 신화를 빌려 치장된 네가지 신분은 창조의 신 브람마의 입에서 나왔다는 브라만(제사관, 학자), 팔에서 나왔다는 크샤트리아(왕, 무사), 허벅지에서 나왔다는 바이샤(상업종사자), 그리고 발에서 나왔다는 수드라(농업, 공예업, 노동업 종사자)로 나뉘어 지고, 이 네 신분은 각기의 안에서 또 수천가지로 세분된다.



여기에 제 5의 신분이라 할 그러나 신분에 조차 끼이지도 못하는 처지인 Out Caste가 있다. 위의 네 신분에 속하는 사람들과 접촉해서는 안 되는 不可觸 賤民(Untouchable)으로 치부되는 이 Out Caste를 정부가 지칭하는 공식용어는 Scheduled Caste이다. 인도의 국부 간디는 이들을 신의 자녀라는 뜻의 Harijan이라고 불렀으나, 이들 가운데 의식이 깨어 있고 저항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을 '짓밟히고 억압된 자'라는 뜻의 Dalit로 불려지길 선호한다.



신분계급이 엄격하게 지켜졌던 과거엔 아웃 캐스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네 신분에 속하는 사람들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되는 입장이었고, 물도 같은 샘의 것을 마실 수 없었으며 온갖 천한 일들만 그늘에서 행해야 했다. 인도 인구의 16%에 해당하는 1억 4천만명에 이르는 불가촉 천민과 또한 이들과 다름없이 취급되는 6,800만명의 토착민들(Tribes, Scheduled Tribes)까지 합하면 신분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은 인도 총인구의 23% 정도에 해당한다.



총인구의 ¼에 달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예약(Reservation)제도이다. 레저베이션 제도는 간디와 첨예한 대립을 벌였던 암베드카르에 의해 추진된 정책으로, 현재는 각종 정부직의 22.5%에 해당하는 인원이 이들 신분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기용하도록 되어 있고 학교와 의회에도 이들을 위한 일정량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아웃 캐스트의 또 다른 신분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 여전히 인도에서 대다수의 아웃 캐스트는 레저베이션 제도에서 사실상 소외되고 있다.



이러한 병폐를 수술하기 위해 1991년 집권했던 Janata Dal당의 V.P.Singh이 레저베이션 제도를 강화하겠다는 선거공약을 실행하려는 과정에서 계급간의 갈등으로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된다. 청렴한 관리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던 V.P.Singh의 개혁의지는 오히려 온 나라가 뒤 흔들리는 분열사태를 초래하게 되어 결국 실패함과 동시에 실권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바 있다. 힌두라는 이름의 종교가 모든 상황을 결정해버리는 즉 정치에 있어 종교 우위라는 비합리적인 상황이 20세기말 인도에선 벌어 지고 있는 것이다.



달리트의 정신적 지주인 암베드카르는 힌두교가 있는 한 자신들의 처지가 결코 달라질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고 1956년 10월 14일, 50만의 불가촉 천민들과 함께 불교로의 개종식을 가진 바 있다.



"힌두교는 그것 자체가 불공평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불가촉 천민들의 처지가 개선 될 수 있다는 여지를 가질 수 없다. 반면 불교는 공평과 정의에 그 바탕을 두고 있으니,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전 인도인들이 불교인이 되는 것이다."

-Dr. Bharat Ratna Ambedkar의 불교 개종식 語錄中 -



이러한 개종식은 이후 인도에서 불교 신도가 500만명이 되는 기폭제가 된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를 불교라고 밟히는 인도인들의 대부분은 불가촉 천민으로 불려지는 힌두교 신분상의 불이익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자신만의 변화일 뿐 대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의 인도인들에게 이들은 여전히 불가촉 천민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앞서 언급한 1991년 V.P.Singh의 예로 대변되는 것처럼, 신분문제는 기회만 있으면 언제고 터질 수 있는 인도가 지닌 휴화산이다.





비하르(Bihar)



인구: 96,774,465

수도: 빠뜨나(Patna)

언어: 힌디, 마이티리, 보즈뿌리, 마가히, 우르두



비하르 지역은 불교의 시조 석가모니 부처님이 평생에 걸쳐 활동했던 곳이다. 또한 인도의 소수 종교인 자인교의 시조, 마하비라도 이곳에서 탄생 하고 활동하여, 비하르 지역은 두 위대한 수행자들의 향기를 간직한 장소들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석존 당시에도 이 지역은 세계 최초의 공화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바이 샬리 를 비롯하여 지금의 라즈기르에 수도를 두고 강력한 세력을 형성 하 였던 마가다 왕국이 무대로 삼을 만큼 번창한 지역이었다. 그 이후에도 마우리아 왕조는 지금의 빠뜨나를 수도로 유지하며 최초로 전 인도를 장악하는 위업을 이루었고, 이는 굽타왕조에 의해서도 계속 이어져 고대의 비하르 지역 일대는 천하의 중심지였다.



이처럼 비하르 지역은 고대에 이미 최고의 정치적 종교적 절정을 향유하 였던 곳이지만 현대의 비하르 지역은 가난한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 이며 문맹률도 가장 높은 곳이다. 따라서 생계를 위하여 캘커타 등지의 대도시로 옮기는 비하르 사람들의 그 수는 엄청나다.



황토 흙으로 덮인 비하르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처럼 대도시 빈민가의 공급원이 되어버린 그 궁핍함이 확연히 눈에 띄는데, 비록 덧없는 인간사의 피할 수 없는 귀결을 말해주는 현장이라 할지라도 가슴 한 구석이 비는 듯한 감상을 참기는 어렵다.



이처럼 오늘날에 이르러 고난의 땅으로 전락하게 된 비하르는 그 이름이 본래 사찰을 뜻하는 '비하라'에서 유래된 것이다. 황토흙의 땅 비하르... 저주받은 곳으로 간주되는 땅의 후예들이 품어야 하는 고통 뒤에 무엇이 있는 가를 반문하게 만드는 곳이다.



비극의 땅, 비하르의 수도는 '빠뜨나'이다. 빠뜨나는 갠지스강을 끼고 형성되어있는 강변도시이다. 넓게 퍼져 흐른는 갠지스강이 아름다운 곳이 지만, 시가지는 궁색한 주의 수도답게 어수선 하고 지저분하다. 게다가 모든 것이 혼돈 상태인 것만 같은 분위기여서 빠뜨나가 100만이 넘는 사람이 모여사는 도시라는 것이 쉽게 실감나지 않는다. 석존 당시인 마가다 왕조의 아잣타사트루왕 시대 때의 빠뜨나는 바이샬리와 라즈기르를 연결하는 나루터를 끼고 형성된 작은 고을에 불과했다. 이러한 빠뜨나가 대도시로서의 기틀을 잡은 것은 석존의 다음 세대로서, 즉 융성한 왕조의 수도로서는 좁은 감이 있는 라즈기르보다 넓은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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