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냥 낙서라고 하죠 뭘.
오늘 옛날 민족예술 편집실에서 일하던 식구들을 만났습니다.
제 나이 25살부터 27살때까지 일하던 곳이었습니다.
오늘 한겨레신문에 이효인씨 글 보니
할머니 얘기 하다가 갑자기 말하더군요.
갑작스런 노출증?
그 한 문장을 노려보다가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 그동안 노출증처럼 내 얘길 주저렸구나.
많이 많이 날 생각하고
내 마음을 생각하고
내 생활을 생각하는 날들입니다.
그리고 전 그동안 한 자도 글자를 쓰지 않고 지냅니다.
집에 일이 있어서
푸른영상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써치를 하고
그래요, 해야할 일들 아주 많은데
아무 생각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써치말고는 없어서
써치만이라도 열심히 하려고 그렇게 지내는 시간들입니다.
민족예술 편집실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전...그 잡지의 기자였습니다.
아주 많이 탈출을 꿈꾸면서도
그렇게 2년을 보냈었습니다.
펑크내는 일 없이 그만 두고 싶어서요.
빨리 후배를 구하고 싶어했고
그 후배가 제가 하는 일을, 아니 그 이상을 하는 날을 기다리고
그러고 나서 그만두고 싶어했던....
정말 그만두고 싶어했던 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우린, 후배랑 같이 짤렸었죠.
말 그대로 짤렸습니다.
전 자유를 느끼며 떠나왔고
후배는 교직원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선배 중의 누군가는 장미농장을 하고
또 누군가는 시간강사를 하고 있더군요.
2년 가까운 시간동안 만나지 못해서
사람들은 아주 예전의 관계들을 떠올리며
저의 그 사람은 잘 있는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그런 얘기들을 물었고
전 갑자기 우울해지다가 그리고 애써 명랑해지다가 그렇게
이런 저런 얘기들을 주저리며 몇 시간을 앉아있다가 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참...
쓸쓸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푸른영상을 꿈꾸며 왔고
또 누군가가 있어서 어색한 그런 시간이네요.
생각해보면 나란 사람은 참 많은 굽이를 지나왔고
지금도 또 한 굽이를 지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 합니다.
기자라는 일을 하며 글을 쓰고 지냈을 때,
과연 보는 사람이 있을까를 의심하는 잡지를 만들고
글을 쓰고 그렇게 지내면서 저는 영상으로 세상에 말할 수 있는
나를 꿈꿨습니다.
유학을 꿈꾸고, 다른 단체로의 탈출을 꿈꾸는 제게
편집장인 선배는 말을 했습니다.
짝사랑을 할 수도 있는 거라고.
한 분야에서 과연 스스로 잘할 수 있을까,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일까,
그런 생각을 추스릴 수 있는 시간은
최소한 3년은 걸린다고.
전 글작업 하는 것, 2년을 꽉 채우고 이 쪽으로 건너왔습니다.
영상이라는 거, 배우는 거말고 일로써 보낸 시간이
꽉 찬 2년을 지나 이제 3년째로 치달아 갑니다.
의식하지 못하면서 지금 고비를 느끼는 건지,
아니면 그냥 보통 사람들도 저처럼 이맘때면 느끼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래저래 생각이 많은 날들입니다.
난 정말 이 일을 좋아하는건지. 그 물음엔 자신있게 말을 할 수 있죠.
그런데..난 정말 이 일을 하려고 하는 건지
그 물음은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집니다.
동강 작업할 때부터 느껴지는 건
난 다큐보다는 그냥 돕는 이로써 남기를 바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런 생각 많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저의 자리를 느끼며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는 게
아주 많이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이 그저 고비이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저의 자리입니다.
마음을 꺼내는 게 어려워지는군요.
제 마음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요.
그냥 이렇습니다.
술을 많이 마셔서
손이 잘 안 움직여지네요. ^^
푸른영상이 참 좋아서
전 행복해요.
얼마나 다행인가...
후배한테 미안한 그런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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