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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슬픈 엄마
번호 2378 분류   일반 조회/추천 1036  /  355
글쓴이 미례    
작성일 2002년 08월 02일 02시 38분 28초
우리 엄마가 신갈로 이사를 가버리셔서 일이 있을 땐 하은이를 신갈에 맡겨야한다. 어제 다큐보기를 위해 하은이는 신갈에 있어야했다. 왜냐하면 내가 다큐보기 7월 담당자였으므로. 밤 10시가 넘자 슬슬 불안해져서 난 다큐보기에 온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신갈로 향했다.

하은이는 머리를 박박 민 채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얼마나 날 찾았을까....' 안쓰러워하며 쳐다보고 있는데 우리 엄마가
"야, 너 없으니까 하은이 엄청 잘 먹고 엄청 잘 놀더라" 하셨다.
난 그저 날 위로하기 위한 말인 줄 알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큰언니 말이(큰언니는 엄마네 집 바로 앞에 산다. 말하자면 엄마는 큰언니네 집 앞에 살기 위해서 머나먼 신갈로 이사를 가신 것이다) 사실이라는 것이다. 하은이는 기분이 좋을 때만 특별히 선보이는 '엉덩이 춤'을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몇 번씩 보여주고 노래를 부르며 잘 놀았다고 한다. 큰언니는 이참에 젖을 떼자고 하은이를 신갈에 맡겨두고서 한달 정도 하은이 앞에 나타나지 말아보라고까지 했다.

오늘 아침, 교육 때문에 또 하은이를 맡기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난 갑자기 서운하고 서글퍼졌다. 하은이는 오늘도 잘 놀겠지. 모녀가 떨어져있어서 외로운 사람은 딸 하은이가 아니라 엄마인 나였던 것이다. 교육이 끝나고 큰언니에게 전화를 해보니 저 너머에서 하은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썩을 년, 나는 이렇게 보고 싶은데 혼자서 잘도 노는구나.'
좀 쓸쓸해지려던 찰나, 갑자기 웬 변덕인가 싶었다. 내가 어제 아침까지 바랬던 건, 내가 일하는 동안도 하은이가 잘 지내는 거였는데 말이다. 내가 계속 하은이에게 말했던 건, "하은아, 엄마 일하러 갔다 올 동안 잘 놀고 있어. 엄마 일 열심히 해서 하은이 뻥과자도 사주고 재밌는 비디오도 만들어줄께"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말이다. 하은이는 어느 날 갑자기 이 엄마를 이해해버린 것이었다. 정작 난 내 딸을 이해하기가 힘든데 말이다.

시무룩한 채로 글작업을 하고 있는데 세째언니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오랫동안 인터넷 접속을 못한 터라 언니는 내게 안부를 물어왔다. 러시아에서 공부를 하며 딸 둘을 키우고 있는 언니는 한국에 살고 있는 언니들보다 나와 더많이 얘기를 하는 사람이다. 둘다 컴퓨터 앞에 자주 앉아있기 때문.
언니에게 내 서운함을 말했다. 그런데 서러움에 한껏 젖어 넋두리를 하려던 나는 언니의 말 몇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없으면 더 잘 논다. 왜냐하면 엄마가 없으니까."

이게 무슨 말일까?

얼마 전에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몇가지 기준> 비슷한 제목의 책을 읽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1.5세때 외가에 맡겨졌다. 동생이 태어나 둘을 다 키우기 힘든 엄마가 주인공을 외할머니에게 부탁한 것이다. 어느 비오는 날, 들에 매어둔 염소를 데리러 갔던 주인공과 이모는 중간에 소나기를 맞는다. 소나기가 지나가고 두 사람은 집에 돌아왔는데 할머니를 본 순간 막내이모는 엉엉 울며 비맞으면서 정말 무서웠다고 하소연을 하는데 주인공은 눈을 반짝이며 할머니한테 말한다.
"할머니, 난 안 울었어요. 나 잘했지요?"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 대여섯살 정도 밖에 안되었을 어린 주인공은 울고싶었지만 울지 않았다. 왜냐하면 울지 않는 아이가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리고 착한 아이여야지 또다시 버림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 엄마를 떠나서 외할머니에게 맡겨진 상황을 어린 주인공은 '버림받은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본능적으로.

어린 주인공의 그런 식의 태도는 나이가 들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싫어도 싫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고 화가 나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 여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해심 많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살았다. 어느 날 그 여자가 헛것을 보고 자꾸 몸이 아파오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여기저기 병원을 다녀보고 점을 보기도 하고 별 짓을 다해본 여자가 마지막에 찾은 곳이 정신과였다. 그리고 기나긴 정신분석을 거치면서 그 여자는 스스로의 문제를 발견한다.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은 '버림받음'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여자는 항상 타인들에게 '좋은 사람' 역할을 하며 살았다. 너무 오랫동안 마음을 억누르고 포장하며 살았던 결과, 마음은 '너무 아프다, 아파 죽겠다'는 표현을 몸을 통하여 나타냈던 것이다.

다시 내 딸로 돌아와서.
하은이는 날 보면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오늘은 밥 먹을 틈도, 화장실 갈 틈도 주지 않아서 안고서 모든 일을 해야했다. 그리고 하은이는 자꾸 내 옷을 잡아끌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뭔가 요구를 한다. 난 하은이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라며 업어도 보고 물도 주면서 뭐라도 하는 동안, 하은이는 점점 떼를 쓰다 나중에는 칭얼대다 급기야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러면 엄마랑 큰언니는 말한다.
"야,참 이상하다. 왜 우리랑은 잘 노는데 너만 오면 그러냐? 참 이상하다"
난 그러면 또 시무룩해져서 '그래, 난 너무 무능한 엄마야. 난 엄마 자격도 없어. 어떻게 아이를 편하게 못하는 사람이 엄마일 수가 있지?'하며 심한 자책감에 빠진다.

아, 그러나 이제 알았다. 하은이는 나를 믿는 것이다. 자기가 아무리 떼를 써도 엄마에게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엄마인 나를 자신의 절대적인 지지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울며 불며 동네가 떠나가도록 악을 쓰며 고집을 피우더라도 엄마는 떠나지 않을 거라고 확실히 믿는 것이다.
하.하.하.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이 맞는 걸까?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일에 유보는 없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했으면 그 생각이 틀리다는 판단을 내릴 때까지는 내 생각대로 가야한다.

아이를 키우는 건 영화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일인 것같다.
어떤 점에서 비슷하냐하면, 이런 것이다.
내가 가편집을 하면 사람들은 막 이거 저거 지적을 하고 많은 말을 한다.
내가 2차 가편집을 해서 다시 보여주면 사람들은 또 막 말을 해준다.
그래서 다시 3차 가편집을 하면 또 사람들은 이런저런 지적을 한다.
그렇게 대여섯번의 가편집을 거치다 어느 순간 알았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자기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그걸로 끝이다. 남는 건 나 혼자이고 모든 건 나 혼자만이 짊어져야할 짐일 뿐이다.
사람들의 말이 힌트는 될 수 있을지언정 결정은 내가, 책임도 내가 지는 것이다.

나는 하은이의 엄마다.
하은이가 어떻게 내게 왔을까?
남편이 해준 말 중에서 가장 쓸만하다고 생각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아이의 영혼이 별처럼 반짝이며 사람들을 내려다 본대. 아이를 기다리는 많은 부모들을 살피다 선택하는 거야. '아, 저 사람들에게 가고 싶다'하고"
그래서 하은이는 내게 왔다,고 믿는다.
아주 가끔 결혼을 후회한다.
남편은 결혼 전보다 더 활동적으로 세상에 나가있는데
우는 하은이를 업고 쌀을 씻거나 빨래를 널다 보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을 때가 있다. 내 날개를 남편이 뺏어간 것같다는 생각에 남편이 미워지기도 한다. 다른 집 남편들에 비해 가사나 육아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사람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이 놈의 '틀'에 문제가 있어서 난 내 날개를 남편에게 뺏겼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은이를 낳고나서도 그런 생각을 가끔 했다.

그러나 삶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남편과 하은이이다. 남편은 나의 절대적인 지지자이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심지어 '도끼로 사람을 때려 죽였다 해도' 그는 나의 옆에 있을 사람이다. 우리 엄마 말고 세상에 그런 존재가 나와 함께 있다는 사실은 굳게 땅을 딛고 서있을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주어진 것과 같다. 나의 다리는 너무나 허약했다. 실제로 몇년 전, 천기누설 까페에서 점을 봤는데 점쟁이가 그랬다. 내 생년월일시의 동물들은 토끼, 돼지, 뱀처럼 다들 하체가 약하고 컴플렉스가 많은 동물이라서 끊임없이 허공을 떠다닐 팔자라고 그랬다. 그리고 점을 보던 그 때의 상황은 정말로 내가 떠돌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난 한동안 절망했었다. 하지만 지금 난,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그 때를 돌아보고 있다. 정착한 채로. 아...그러고보니 난 남편에게 날개를 주고 다리를 얻었나보다.

그리고 하은이. 나는 하은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하은이의 옆에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절실하게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눈빛 하나, 몸짓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시켜서 소통하고 느끼는 것인가보다. 별처럼 반짝이다 날 선택한 하은이를, 그 순결한 영혼을 이해하는 시간은 설렘과 기대, 탄식과 비애가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나의 엄마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세상 생명들의 소중함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하고 있다. 소중한 생명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나란 인간이 얼마나 강해져야 하는가를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하은이의 엄마다.
하은이가 나를 선택했고, 또 내가 하은이를 선택했다. 내 아이의 선택이 고마워서라도 난 좀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하고 또 좀 더 강해져야겠다. 함께하지 못함이 미안하다면,미안함만큼 치열해야겠고 함께하는 시간이 힘들다면,힘든 만큼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져야겠다. 내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영화를 만들던 시간처럼 나는 내 아이를 그렇게 키워야겠다. 지나친 자기비하에 빠져 아이에게 눈치보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당당한 엄마가 당당한 아이를 만들테니까.그리고 그렇게 내 딸과 함께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가야겠다.
내 굳센 두다리를 땅에 딛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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