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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선 자리 2
번호 22 분류   일반 조회/추천 317  /  102
글쓴이 류미례    
작성일 1999년 09월 07일 14시 26분 46초
<행당동사람들 2- 또 하나의 세상>을 보았다

마지막 장면, 아이 둘이 앉아 조개를 먹는 그 장면을

나는 정확히 15번을 보았다.

죠그셔틀을 돌려 찾아가며 보고,또 보았다.

'우리들의 소풍에 당신들을 초대합니다'라는

그 멘트를 나는 그렇게 15번을 들었다.



영화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나는 그 시간들로부터 얼마나 멀어져있는가.

세상에 거칠 것이 없었던, 아니 없다고 생각했던

20대 초반의 그 시절.

청량리 철거촌의 무너져가는 집들

그 곳 한 구석의 대책위원회.

그 곳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우린,

새벽이면 규찰을 돌았다. 쇠파이프 소리를 내면서.

가끔씩 경찰이 쳐들어올 거라는 소식을 듣는 날이면

우리는 밤을 새웠고

아침이면 꽃병 던지는 연습을 했다. 꽃병...



그리고 나는 그 곳을 잊었다.



아니, 가끔 생각이 난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서면 맞은편에 13단지가 보이니까.

13단지.

내가 미래를 두려워할 때 그 곳은 그 두려움을 더 크게 만들었던...

그런 곳이다.



어느날 내가 살던 하안동, 장미덩굴이 유일한 경계였던

평화롭던 그 마을이, 우리 8단지가

공사로 분주해졌다.

장미덩굴 대신에 붉은색 벽돌담을 만들기 시작했다.



왜??

궁금한 내 질문에 새언니는

맞은편 13단지 애들의 불량스러움 때문이라고.

밤이면 놀이터에 와서 술을 마시고

본드를 분다는 것이다.

교육상, 8단지 주민들은 붉은 담을 치고

경비원 수를 늘렸다.

중산층의 안락하고 고운 생활을 위해서.



13단지는 말하자면 임대주택이다.

임대주택은...당시 청량리 철거투쟁의 목표였다.

내가 살고 있던 광명 하안동에도

철거투쟁은 벌어졌었고

(언젠가 본 도시빈민의 역사라는 책에서 언급할 정도로

광명은... 철거투쟁이 힘있게 전개된 곳이었다)

그렇게 13단지는 우리 집 앞에 자리잡았다.



나는 그 때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생활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로운 생활이란, 말하자면... 후후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취직공부해서 갖는 직업이 아니라

학교 다닐 때 많이 말하고 말해지던

우리가 말하기를 역사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노동자가 되려는 그런 준비였다.

몇 번의 시도 끝에 현실화를 앞두고 있었던

바로 그 때.

하지만 나는...너무 많이 지쳐있었고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에 빠져있었다.

말하자면... '맛이 간' 상태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눈맑은 우리 류승찬이나 우리 류승은을 보면

나는 욕심이 생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 집에 살다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스러운 아이는

장미꽃같은 고운 입술로 내게

"엄마"라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

그 꿈을 나는 한 번도 잊지 않았다.



내가 두려웠던 것.

그것은 내가 선택할 미래가 전혀 안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귀여운 아이들은

가난에 찌든 엄마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그렇게 본드를 불거나 술을 마시지 않을까.

난 그 때 왜 그렇게 미래에 대해서 주눅이 들어있었을까.



그렇게 난 청량리를, 철거투쟁을 잊었다.

그것이 정리하지 못한 나의 과거이다.

노동자집회에 가거나, 봉천동에 가면

노동자뉴스제작단이나 푸른영상의 영화들을 보면

나는 항상 가슴 한 구석이 쓰라렸다.



그리고 생각을 했었다.

나는 지금 그 시간들로부터 너무 멀리

너무나 멀리 떠나와 버린 것은 아닌지.

내가 선 자리는 너무나도 많이 변해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지금은 약간의 자신이 생깁니다.

<또 하나의 세상>에 나오는 그런 사람들처럼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살 자신이 조금씩 생겨요.



난 돈만 벌어본 적도 있고

돈 많은 남자와 사귀어본적도 있고 (히히)

아무 생각없이 방탕하게 놀아본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풍이 곱게 물든 아파트 광장에서

결고운 햇살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조카를 돌보다가

난 이 생활을 절대 포기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몇 번의 방황 속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을 하게 된 나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도 행복합니다.

동강에서 고추를 따거나

태일형과 함께 양심수 선생님들을 뵐 때

그리고 시사회 뒷풀이를 할 때,

가끔씩 푸른영상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

나는 이렇게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태일형네나 은정언니네, 감독님네 살아가는 방식을

많이 알고 싶어합니다.

알고보면 나라는 사람도 가난을 그렇게 모르지만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엄마의 품안에서

오빠의 보살핌을 받으며

언니들이나 형부들이 주시는 용돈에 기뻐하는 미숙아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좀 한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욕구를 조절하고 생활을 계획하며

그렇게 미래를 준비한다면

그리고 그런 사람들 속에 함께 있다면

적어도 힘들어서 포기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하나의 세상>에 나오는

그렇게 조개를 나눠먹을 줄 아는

그렇게 해맑은 웃음을 지을 줄 아는

그런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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