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때 88올림픽이 있었는데 그 때 비온디라는 수영선수가 있었다.
그 뒤로 비가 내리면 비온디가 생각난다.
그리고 생각나는 말들, 휘경여고, 개나리, 이문세, 에어체킹...
물론 '아담'이라 불리던 변태성욕자도 다섯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것들이 내 여고시절을 채우고 있다.
에어체킹이란 말은 멋있다.
그 말에서의 '에어'란 방송중을 뜻하는 '온 에어'의 에어이겠지만
나는 그냥 내 주변을 떠다니는 공기라고 생각하고 싶다.
용돈을 모아 작은 카세트를 마련한 큰언니는
교육방송을 들어야 한다는 내 말에 아끼던 그 물건을 선뜻 내 주었고
나는 그것으로 교육방송 보다는 이문세의 노래를,
그리고 연말이면 가요, 팝송, 클래식, 영화음악....등등의 분류에서
베스트20을 뽑았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더 많이 들었다.
그리고 시작된 에어체킹. 그렇게 모아진 노래 테잎들은 그러나...
광명 집의 잡동사니 서랍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다.
누가 보지도 않는데 테잎에 라벨을 붙이지 않아
무슨 노래가 어느 테잎에 있는지 잘 모르겠고
대학을 간 뒤엔, 대학 이전의 모든 기억들이 깨끗이 소거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난 그렇게 스폰지처럼 단순한 인간이다.
순간순간 확 빨아들이고 쭉 짜진 다음 또 확 빨아들인다.
그래서 내 인생은 마디마다 단절되어있다.
그래서 어떻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다.
나는 결혼을 해서 참 좋다.
결혼을 해서 가장 좋은 건 내가 합법적으로 딸을 가질 수 있었다는 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사랑스러운 내 딸.
하루종일 같이 있었으면서도 지금처럼 하은이가 자고 있을 때
나는 하은이가 그립다.
가끔씩 일 때문에 짧게는 한 두시간, 길게는 서너시간을 혼자 나갈 때면
하은이가 보고싶어 시무룩해진다.
하은이를 낳기 전의 내 계획은 1년간만 하은이를 내가 키우고
13개월째부터는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이었다.
집 근처의 당곡어린이집에 알아보니 19만 7천원이라고 했다.
'푸른영상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 어린이집 비용은 댈 수 있겠다'생각했다.
그런저런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일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멀리 보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성급한, 감정적인 시작이었다.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 생각했지만 일단 돈이 부족했다.
다달이 10~20만원씩 부족했다.
그건 출산 전 내가 벌었던 액수 정도였던 것같다.
산후조리를 위해 오셨던 엄마와 같이 살게되면서
돈이 부족한 사정은 엄마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소심한 엄마는 그깟 쌀값이 얼마나 된다고 우리가 돈이 없는 게
당신 탓인양 미안해하셨다.
그러다 엄마가 일을 시작하셨다.
엄마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아침 10시에 들어오신다.
사무실 청소를 하는데 일당이 만원 정도. 계산해보니 시간당 4천원이었다.
그 일을 하게 된 엄마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신다.
엄마 나이에 그런 일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냐며.
내가 여성동아에 아르바이트로 글을 쓰면 매당 6천원을 받는다.
가장 싼 축에 속하지만 한 번 쓰면 12만원 정도를 번다.
엄마가 그렇게 일하시는데 나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
여성동아에 다시 연락을 하고, 라디오방송을 시작하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나 일하러 가는 동안 하은이 좀 봐줘.
우리 그렇게 돈 벌어서 반땅 하자."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번씩 2~3시간, 한달에 4~5번 나가면 되는 정도였다.
집의 빚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그렇게 벌이가 생기고
또 하은이를 봐준다는 명목으로 엄마께 조금이라도 돈을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러면서 푸른영상 일을 시작했다.
1년만 하은이를 내가 키우고 어린이집에 맡기겠다는 계획은 수정되었다.
하은이가 세 살 정도가 될 때까지는 이런 식으로 일을 할 계획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푸른영상 일이다.
딱히 하는 일은 없다.
일주일에 한 번 회의에 가는 것. 그리고 써치를 하거나 글을 쓰는 것.
아직까지 회의 말고는 딱히 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하은이를 업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기쁘다.
푸른영상 일을 하는 동안 만큼은 엄마 손을 안 빌려도 되고
그리운 하은이랑 안 떨어져도 되니까.
범수형의 글을 보고 또 삼동이의 글을 보면서
난 잘 모르겠다. 푸른영상이 무슨 책임이 있는지.
얼마 전 경화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런저런 말을 쓰면서도 조심스러웠던 건
서로 다른 처지와 상황 땜에 뭐라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
뭐 별 얘기는 아니었고....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에 나오면 어떨까...
비슷한 처지여서인지 그랬으면 하는 소망을 담은 편지였다.
난 그렇다.
이때까지의 내 인생이 마디마디가 끊겨진 비틀거림이었다면
28살 이후 찾게된 다큐멘터리는, 일하게된 푸른영상은
평생 하고싶은 일이고 있고싶은 곳이다.
하지만 몇 년 후면 시골생활을 해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않다.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시간동안 난 단련되어야 하고 배워야 하고....
그리고 채워야 한다. 지금의 시간은 내게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마감에 쫓겨서 글을 쓰거나 다음날 수업 준비로 바쁜 내 등 뒤에서
하은이가 안아달라고 울음을 터뜨릴 때면 무척 서글퍼진다.
마감 때면 남편이랑 꼭 한 번씩은 싸우게된다. "애도 못보나..."하면서.
그러면서 드는 생각,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나....'
한편으로는 저기 화악산자락에 위치한 장애인 공동체 기사를 읽은 오늘은
그런 데 가고 싶고 좀 살면서 배우고 싶은데 하은이 땜에 못가지...싶고
범수형은 수퍼우먼 생활을 흉내낸다는 표현을 썼지만
글쎄...안어울리고 전혀 그렇지가 않다. ^^
맨날 엄마한테 욕먹고 허둥대고 그런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집이 가까워서인거 같은데.
무엇보다 내게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같다.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나의 삼십대는 어떤 색깔의 공기로 담겨져있을까.
나의 10대는 몽환에 싸인 허공에의 서성거림이었고
나의 20대는 온통 질척거리던 진창길의 비틀거림이었다.
바라건데 나의 30대는 비탈지고 울퉁불퉁한 산길이라도 타박타박 힘을
실어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일 수 있길.
글을 쓰는 동안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쳤다.
제목 한 번 잘 지었군~!
그리고....지금 시간 새벽 3시 38분
사랑스러운 우리 딸 하은이가 일어났다.
잠을 잘 수 없어 울고 싶은 새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