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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50 분류   일반 조회/추천 320  /  128
글쓴이 류미례    
작성일 1999년 11월 06일 04시 15분 45초
매일 촬영을 간다.

봉천동 나눔의 집 후원의 밤 행사에 상영될 12분 정도의

영상물을 맡았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가는 곳은 은천고개에 있는 장애인 재활센터이다.



그 곳에 가면 다섯 명의 비장애인과 14명의 정신지체인들이 있다.

2주일 전에 카메라없이 자료 받으러 간 것까지 합하면 총 4번을 갔다.

그 사람들 앞에서 나는 또 여지없이 주눅이 들어 말도 제대로 못하고

웃기만 했다. 뭐 그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웃는 나를 보고 그 분들도 웃고, 그 분들이 웃으니 또 나도 따라 웃고

그러다보니 하루종일 웃기만 했다.

무엇보다 그 분들이 하는 말을 잘 못 알아 듣겠고

또 알아듣는다 하더라도 잘 이해를 못하겠다.



오늘은 양재 시민의 숲으로 소풍을 갔다.

가서 처음으로 말을 해봤다.

그 분들이 와서 말을 시켰기 때문.

예를 들면 "이거 사진기예요?", "몇살이예요?",

처음엔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몰라서 "네", "스물 아홉이오"라고

대답만 하고 그 다음에 할 말을 못 찾기도 했다.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다가

내가 찍는 것은 비디오이고 움직이는 모습이 그대로 담긴다는 얘기를 했다.

다행히 내가 가진 카메라는 액정이 있고, 또 액정이 180도 돌아가기 때문에

찍히는 사람이 찍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 모습을 보며 재미있어 했다.

처음엔 카메라가 오면 얼른 바른 자세로 앉던 그분들도

이제는 브이자를 그리거나 미소를 보내주었다.



소풍이 끝나고 다들 돌아간 센터에서

전도사님, 선생님 2분, 그리고 자원봉사자 2분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사람들이 내게 "우리 회원들 보고 싶어질 거 같죠?"라고 물었을 때

말을 못하고 또 웃었다.



솔직하게 말을 하자면 정말 보고 싶을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 특성을 조금씩 알게 되고

그 사람들이 서로 하는 말들이 재미있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특히 자꾸 따라다니며

"선생님 재미있나요?", "선생님, 잘 찍으셨나요?"하다가

"선생님을 찍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경수라는 아이가

참 사랑스러웠다.(21살인가...아이도 아닌데. ^^)



그 아이는 장애가 좀 덜해서

모둠산방이라는 곳에 파견이 되어있는 아이이다.

어제 공장에 촬영 갔을 때에는

말도 없고 미소만 보이더니

오늘은 무척이나 신이 나 했다.

그 곳 선생님들은 경수가 살도 빠지고 말수가 많이 줄었다고 했다.

단지 사흘 뿐이었지만 나는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얘기들을

보고 들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한다는 것이 자꾸 망설여진다.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4년 전엔가, 은광원이라고 장애인들만 모인 고아원에 갔었다.

그 때 머리를 다 밀고 기저귀를 차고 누워있던 어떤 아이를 옮기다가

아이로만 알았던 그가 나랑 동갑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오늘도... 다운증후군임이 분명한 은숙씨라는 사람에게

아주 아이인 줄 알고 "그네 타니까 재미있나요?" 라고 물으며

"몇살이예요?"하고 물었더니 스물 아홉이라고...

그런 식의 충격이 새로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꾸 나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운동을 '했던' 시간보다 운동을 했다고 '말하는' 시간이 더 길다는

어떤 시인의 한탄처럼

단지 며칠을 갔다 오고 나서

이러저러한 것을 느꼈다고 말을 하거나

뭐 그리고 거기 선생님들에게

"너무 너무 좋았구요, 또 오고 싶어요"라는 오늘의 감정을

말하는 것이 그냥 뻔뻔하게 느껴졌다.



가로지르고 싶다.

내 감정이나 스스로가 그어놓은 금들, 설정한 단계들을

가로지르고 싶다. 좀 솔직해지고 당당해지고 싶다.

지능이 낮아 말이 통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들을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말하는 그 선생님들처럼

주눅들지 않고

할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그 때는

내겐 언제쯤 올려나.



가로지르기.

영역과 단계를 가로지르며

스스로의 느낌대로, 생각대로 살아가기.



최근 나는 스스로가 너무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말이 틀리진 않는 것같다.

생각의 영역이 엄청나게 넓다.(이건 폭과 깊이가 절대 아님)

중심없이,가닥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같아

신중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매일매일 하고 있는데

그것이 반성하고 내일을 계획하는 식이 아니라

일상의 말문을 닫게 만들고 있는 것같다.



전도사님이 "장애인 인권에 대해 관심없나요?" 라며

그런 것에 대해 만들어보고 싶지 않냐고 물었을 때

나는 또 그냥 웃었다.

관심이 있다. 그런데...또 그런 생각 든다.

내가 혹시 저널리즘적 태도로....

아이템에 빠져있는 건 아닐까?



며칠을 다니고

몇 날을 공부를 하면서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고

정말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선의 차원이 아니라

베푸는 차원이 아니라

당당하게 이 세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바로 그 얘기를

내가...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처지와

나의 감정과

내가 설정한 내 인생의 계획과

그리고 주위에서 많이 보았던

꼴불견 언론처럼

소재주의에 빠지진 않았나에 대한 물음에

자신을 잃어서...

자꾸 말을 잃는다.



가로지르고 싶다.

나의 상황과 나의 생각과 나의 욕구의 그 간극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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