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훈/1995/50분

 

작품내용

우리는 졸업식장 하면 으레 환희와 축하로 가득차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1995년 2월 명지대의 졸업식은 웃음보다는 눈물을, 축하보다는 격려를 찾을 수 있다. 91년 4월 경찰의 쇠파이프에 희생된 강경대의 명예졸업식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91년 4월26일 갑작스레 전해진 저녁 뉴스는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명지대 1학년에 다니던 한 학생이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이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놓고 경찰과 정부는 과잉진압에서 나온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하였고, 학생과 시민단체들은 공안정국이 창출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사건이라는 공방전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공방전 속에서 많은 학생들의 분신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꾸었다. 해체 백골단과 타도 민자당을 외치면서, 눈을 뜨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하루 하루 젊은이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지며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었다. 이 과정을 지켜 보며 사회 일각에서는 죽음을 부추키는 어두운 세력이 있다는 식의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5월 14일 명지대에서는 강경대군의 장레식이 진행되나 경찰의 원천 봉쇄로 이대 사거리에서 다시 연대세롤 운구는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흘이 지난 18일이 되어서야 경대는 장지인 망월동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광주 진입을 불허하는 경찰과 고속도로 위에서 장장 16시간 동안 운암동으로부터 들어 온 광주 시민들과 경대를 따라온 사람들은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긴장은 고속도로 옆길로 운구차량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해결되었고 경대는 광주 시내에서 노제를 지내고 망월동으로 향한다.

4년이 지난 1995년 명지대 학생들은 경대를 보기위해 광주 망월동을 찾는다. 아니, 경대의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서 경민회관으로 왔다. 92년 경대를 따라 광주로 내려온 경대 어머니 이덕순씨는 당신의 또하나의 아들 딸들을 반갑게 맞으며 경대가 좋아하던 '투쟁의 한길로'를 힘차게 부른다.

이 작품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사건이 진행되는 구조를 갖고 있고, 이야기 전달방식으로는 사건의 진행이 큰 덩어리들의 묶음으로 하나씩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다소 거친 편집과 사운드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 하는 소재의 무거움 때문에 작품의 투박함은 묻혀버리고 있다. <약속하나->는 관객의 영화보기에 있어서 서로 다른 차이가 발생한다. 91년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영화외적인 경험들을 상기시키는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영화가 제공하는 정보량이 작은 편이어서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편이다. 또한 제목에서 제시하는 약속이라는 것조차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음으로 해서 다소 모호한 결론을 만나기도 한다. 거칠게 말한다면 감상적인 결론을 유도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그러나 늘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계산적으로 되어가는 우리들에게 순수한 열정과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무엇보다는 따뜻한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연출 이야기

이미 4년이나 지난 일을 무슨 꿍꿍이 속이 있길래 만들려고 하는가?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작업과정에서 사람들과 만나며, 뭉개진 색을 내보이는 모니터 앞에서 난 어쩌면 그것을 풀어 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완성된 영화가 그 질문에 답을 이야기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미숙하게 보이기만 하다. 좀 더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형식을 가질 수 있었다면, 무엇인가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 조그마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하나의 컷을 쓰기 위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하는 선택. 그 선택이 사람을 바짝 마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곤욕스러운 것은 애초의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경대 그는 참으로 순진한 사람으로 보인다. 자기가 아는 것만큼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을 가졌으니 말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버리는 선택에서 그는 자신의 단순함을 골랐던 것이다. 그냥 편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요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순수함은 아닐까 ? 이리재고 저리재고, 이런 논리 저런 사상을 주장하는 이들은 많지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분노할 때 과감히 일어서는 그런 단순한 사람은 우리들 주위에 얼마나 있을까 ? 91년 거리를 메웠던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나오게 되었을까 ? 그건 아마 분노는 아니었을까 ? 갓 대학 신입생의 딱지를 벗으려 하는 젊은 학생의 죽음이 사람들 가슴 속에 숨겨진 각자의 단순함, 순수한 양심의 소리를 깨우지는 않았을까 ?

더 이상 당신과 같은 불행한 어머니가 나오지 않기 위해 또 하나의 아들 딸을 기다리는 어머니. 또 어머니를 찾아 가는 아들 딸들. 그들은 어쩌면 좋은 이웃들과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는 지름길로 가는 지도 모른다. 우리도 한번 쯤은 단순한 생각을 갖고 단순하게 행동해 보는 건 어떨까? '열정을 갖고 단순하게' 경대가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이것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