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정현주/1995/40분

 

작품내용

컴퓨터를 배우는 데도 오랜 기간의 훈련이 필요하고 운전을 하기 위해서도 연습과 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반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결혼생활을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는가. 한국 가족상담.교육연구소 유은희,정현숙 교수팀은 가족관계에서 부부관계가 점점 중요해 지는 현대 사회에서 건강한 부부생활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부부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결혼 한지 1년 미만의 신혼부부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을 푸른영상에서 촬영한 것이다. 프로그램은 1)결혼과 가족과 나 2) 남성심리.여성심리 3)효율적인 의사소통 4)즐거운 성생활 5)창조적으로 싸우기등 다섯번에 걸쳐 진행되는데 구체적으로는 결혼이란 무엇인가, 나와 다른 상대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결혼 생활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갈등은 무엇이며 이 갈등을 창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등 다양한 정보와 구체적인 훈련방법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작품은 강의와 참여 부부들의 반응, 참여자들의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와 신혼부부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부부들의 삶의 목소리가 깊이 있게 담겨지지는 못했지만 결혼의 중요성, 특히 부부관계의 중요성, 이런 프로그램이 예비부부나 신혼기부부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필요성에는 공감하게 되는 작품일 것이다.

 

연출 이야기

'아니 저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짧은 몇분짜리 영화를 만들어 내다니. 저 돈이면 교육 프로그램을 몇개나 할 수 있을 텐데.....'

교육학을 전공하고 이런 저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하던 나는 남편이 하는 일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푸른영상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거의 밤을 꼬박꼬박 세워가며 만드는 작품들이 여러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 같지도 않았고.

어디 그뿐인가. 결혼을 하고도 촬영이다. 편집이다. 집에 안들어오는 날이 들어오는 날보다 많고, 집에 온다고 해도 잠을 자거나 TV 앞에 붙어 앉아 있는 남편. 더우기 TV는 바보 상자라고 생각하고 가능한한 TV를 보지 않는 나에게 그런 남편은 나와 무척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지금이 영상시대고 영상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렇지. 아이들 교육도 생각해야지, 밥먹을 때까지 TV를 켜놓고 잠들기 전까지 TV를 보다니 세상에 이럴수가.

남편이 집에 돌아오면 나와 남편의 신경전이 시작된다. 들어오자마자 TV를 켜는 남편. 부엌에서 일하다가도 TV가 켜져 있으면 얼른 꺼버리는 나. 남편과 가끔 영화를 보러 가는 날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너무 감동적인 영화내용에 펑펑 울고 있는 내 옆에서 구성이 너무 엉성하다든지, 내용 전개에 무리가 있다든지, 무슨무슨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영화라든지 하는 소리로 영화를 분석해서 꼭 나를 김새게 하니 말이다.

'정말 전문가하고 영화를 보는 일은 매우 재미가 없구나...'

연년생인 우리 아이들이 탁아소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르뽀 기자나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3년이나 쉬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푸른영상에서 일을 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운영도 돕고 푸른회원관리도 하면서 차차 작품구성하는 일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10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은지 신중하게 생각해서 선택하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남편이 하는 일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던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좀 걱정이 안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구성이나 리포터정도의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고 더욱 중요한 것은 월급이라도 좀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운영되는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함께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푸른영상의 경리 아줌마로 취직을 한 셈이다. 그리고 일년 동안 한 일이라고는 작품을 할 수 있도록 돈을 꾸러 다니는 일, 푸른회원을 좀 늘여보려고 전화통을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하는 일이었다. 원래 기계와 친숙하지 못하던 나는 다섯 가지가 넘는 연결 잭 이름조차 구분하기 힘들었다. 복잡한 편집기계, 무거운 카메라를 만져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촬영이란 우리 남편처럼 영화에 목숨을 건 사람들, 끼가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푸른영상에서 일하면서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는 된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눈에 익숙해진 TV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타리와는 다른, 화질은 좀 나쁘지만 독립영화에서만 할 수 있는 주제로 소외된 이웃의 목소리를 담아가는 푸른영상 사람들의 작품이 가뭄에 단비처럼 귀중하다는 것을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라는 것이 내용 뿐 아니라 촬영이나 편집등 굉장히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남편이 집에서 TV를 보면서 중얼거리는 '와 잘찍었다. 특이한 편집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남편은 나와는 다른 각도에서 TV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오랜만에 아이들과 집에 있는데 TV만보고 있는 남편까지도 이해되는 건 아니다.)

남편은 틈만 있으면 내가 관심있는 주제를 가지고 구성을 한번 해보라고 이야기 하곤 했다. 그러나 내가 촬영을 하고 작품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작품을 기획하는 일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나와는 달리 남편은 카메라는 누구나 만질 수 있고 누구나 쉽게 작품을 해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것 같았다.

한국가족.교육 상담소에서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좀 촬영해달라는 제안이 왔을 때 푸른영상에서는 가족문제는 내가 관심있어하는 주제니까 작품을 한번 만들어보라고 했다. 그때 마침 영상일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또 한명의 초보자 이주형씨와 함께.

상담소의 프로그램은 다섯번에 걸쳐 진행되는 신혼부부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었다. 우리는 그 강의 내용을 촬영하고 거기에 참석한 신혼부부들의 이야기를 곁들여서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작품을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이주형씨는 촬영을 맡고 나는 전체 구성을 맡았다. 처음인 주형씨도 온 세상이 렌즈로 보일 만큼 열심히 찍었다. 첫날 강의를 찍은 테이프를 편집실에서 보던 그날이 내게는 무척 의미있는 날이다. 촬영경험이 거의 없는 주형씨가 아무리 열심히 찍었다고는 해도 쓸만한 화면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우리는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찍어도 되는 건가. 이런 걱정과 함께 '나도 촬영을 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혼자 찍는 것보다 둘이 찍으면 최소한 건질 화면이 좀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우리는 정말로 엉망으로 찍었다. 어떤 날은 롱 샷이 하나도 없는가 하면 어떤 날은 오디오가 말썽을 부리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120분짜리 테잎을 13개나 찍었다.)

마감일을 열흘이나 앞두고도 우리는 구성안을 확정하지 못했다. 주형씨와 밤을 세워가면서 OK컷을 고르고 그 많은 강의내용을 하나하나 받아쓰면서도 도무지 작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우리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는 틈틈이 편집기 사용법도 배워야 했다. 편집을 시작하면서 1초가 얼마나 긴 시간인지. 하루 종일 30초 밖에 편집을 할 수 없었던 날도 있었다. 한컷을 고르기 위해 몇날을 고민하던 푸른영상의 선배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편집을 하는 동안 푸른영상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함께 밤샘작업을 해주었다. 김동원 대표는 이 작품이 가편집 수준 밖에 안된다고 말하지만 그것도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무슨 일이나 그렇지만 녹음을 마치고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나레이션도 다시한번 손보고 싶고 군데군데 더 다듬고 싶은 부분도 많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정말 귀중한 체험이었다. 함께 밤샘 작업을 하는동안 푸른영상 식구들과 말로는 할 수 없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느끼고, 또 우리가 하는 이 영상작업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되니 말이다.

특히 작품의 주제 자체가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한번은 되돌아 보고 가야하는 것 같아 더욱 의미있게 느껴진다. 나 역시 이 작품을 하는 동안 서로를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부관계, 동지로서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테잎이 대학의 수업시간뿐 아니라 결혼을 한 부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