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일/1993/38분

 

 연출 이야기

아쉽지만 원진 작업을 마치고 몇달 지난 어느날 신문에 원진문제, 일괄타결이라는 제목의 1면 톱기사가 나왔다. 드디어 원진문제가 해결되었구나는 생각과 함께 정말 타결이 된 것일까라는 의구심도 생겨났다.

사무실 일을 마치고 원진으로 부리타케 달려갔다. 폐업한 공장에는 회사에서 고용한 수위가 썰렁한 회사를 지키고 섰고 노조사무실은 환자분들과 노동자 분들이 폐업 이후 새로 뽑은 집행부와 앞으로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다.

"아저씨 원진문제가 해결되었다면서요?"

"자네는 우리와 2년 가까이 있으면서 그놈의 합의에 대해 다 믿는단 말인가?"

"신문과 방송에서 연일 원진문제 타결되었다면서 산업재해에 대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고 나오던데요."

"개뿔이여. 노조원들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집행부가 단독으로 처리한 거지. 언제는 합의를 안봐서 해결 안되었나. 죽을때 죽더라도 직업병 인정을 받고 죽어야 억울하지 않지."

처음 원진 작업을 할 때 카메라를 만지는 초보자들과 함께 시작했다. 2달 가량이 지나자 원진문제를 파악했으니 작업을 마무리짓자고 했다. 그때 난 원진 문제가 마무리 되어가니 원진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록해야 한다고 고집부렸다.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야 했는데 무작정 다큐멘터리를 할려면 그래야 하지 않느냐는 식이었고 친구들은 모두 힘들고 지쳐서 작품을 끝내야 한다는 욕심만 컸었다.

끝나고 나서 기록영화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야 하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논의하며 싸워가며 만드는 작은 세상이라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난 사실 기록영화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난 원진별곡을 만들면서 기록영화는 우리의 삶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되고 삶의 일부분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들을 끊임없이 해야함을 알았다. 원진별곡은 이러한 시도로 불안하고 아쉬움이 많은 발걸음이었지만 앞으로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은 최선을 다해 만들어 갈 것이다.

 

제작일지

92.07.10

새로운 친구들과 원진노조를 들렀을때 노조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그간 싸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힘을 잃은 것이 사실이고 새롭게 재충전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교육부장을 만나서 몇가지 부분에 대해 물었다. 그는 원진같은 곳이 몇군데만 더 있어도 현재처럼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산재왕국이라고 하면서도 산재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 상황이 너무도 안타깝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번 작품의 주제와 의도를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다. 산업보건 안전위원인 박상봉씨는 환자들의 고통스런 삶과 그들의 생활 속에 파고 들어 직업병의 심각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작품을 부탁했다.

93.08.05

기록영화는 인간의 삶을 다루는 것이다. 모든 영상이 인간 삶이 중심테마이듯이 기록영화 또한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