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길 옆 공부방

 

서경화/1999/50분

음악 : 김동범

제작 : 푸른영상

연출 : 서경화

제작 기간 : 1997년 10월 ~ 1999년 11월

제작 사양 : Hi 8mm, 디지털 6mm

총 촬영 분량 : 60분 55개 (550시간)

 

기획 의도

이 작품은 만석동이라는 빈민지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이 동네에 정착해서 가정을 꾸미고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단계에까지 와있는 만석동 기차깃옆 공부방사람들의 일상의 행복과 갈등을 통해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 겸허하게 산다는 것 그리고 함께 나누며 베풀며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고 한다.

가난을 삶의 방식으로 선택한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 가난하게 사는 것, 함께 더불어 나누며 산다는 것의 의미가 오늘날의 우리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생각해본다.

  

작품의 줄거리

공부방에는 많은 규칙들이 있다. 함부로 아이들을 안아주거나 쓰다듬거나 이름을 부르지 말 것. 작품제작을 위해 만석동에서 함께 살기로 결심한 감독은 생소한 원칙과 규칙에 조금씩 적응해 간다. 그러나 동네사람들을 촬영하지 말라는 등 작업에 제한을 받기도 한다.

동네의 상황을 그나마 알려주는 건 아이들이 매주 한번씩 쓰는 글쓰기를 통해서이다. 가난 때문에 매일 싸우는 부모, IMF로 더욱 어려워진 집안 때문에 아이들은 눈물 짓고 이모삼 촌들이라 불리는 봉사자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한다. 하지만 봉사자들은 아이들에 게 가난하지만 올바로 사는 것이 꼭 공부를 잘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감독은 공부방 봉사를 시작으로 이제는 동네주민이 된 봉사자들의 삶에 좀더 관심을 갖게된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살라고 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그들의 삶을 통해 답을 찾기 시작한다. 봉사자들은 만석동에서 가정을 꾸려 작은 공동체를 꾸리며 살고 있다. 공부방의 이런 저런 문 제들부터 각 가정의 육아나 경제적인 문제까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하는 공동체 부부모임 에서 또 우유배달을 하며 공부방 아이들을 돌보는 동훈삼촌의 가족들의 생활을 통해 이들이 삶의 방향으로 삼고 있는 '가난'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동네사람들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가난,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경쟁을 거부하기 위해 또 저항의 방식으로 선택한 가난, 소외되고 억압받 는 이들과 같은 처지로 연대하기 위한 가난이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이런 가난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감독은 공부방에서 자라 이제는 사회인이 된 청년부 두 사람을 만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모삼촌들의 삶을 받아들이고 따르고자 하는 정희와 이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수정이. 두 친구 모두 동네를 위한 일들을 하고 공부방 동생들을 돌보지만 사회인 이 되면서 갈등이 생긴다. 자기 속 얘기를 잘 하지 않던 수정이는 청년부 모임에서 아버지에 대 한 얘기를 시작한다. 매일 같이 싸우던 부모를, 아버지를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는 수정이는 그렇 게 가난한 자신 현실과 조금씩 화해한다.

아직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자신없고 어둡지만 아이들은 함께하는 법을 몸에 익히며 자라 왔다. 그리고 어른의 새로운 모습으로 이모삼촌들을 보면서 자랐다. 공부방은 아이들이 많이 방 황하고 갈등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공부방은 한가지 사실은 굳게 믿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 지 아이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문제들을 해결할 힘들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 는 것을....

 

연출의 변

처음 만석동을 찾았을 때의 그 강렬한 느낌을 나는 아직 지울 수가 없다. 비릿한 바다냄새와 다닥다닥 붙어있던 작은 2층 판자집들. 이제는 그런 풍경들도 익숙해지고 사람들도 편안해졌다. 그런데 요사이 동네 풍경이 변하고 있다. IMF 이후 문을 닫은 공장들은 폐허가 되어가고 주변 에 아파트 촌이 건설 준비를 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질 않 는다. 하루 세끼 먹기도 힘든 아이들, 파괴되는 가족들. 마음의 상처들도 얼룩진 아이들의 모습.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더 피폐화되어간다.

작업을 하는 내내 나는 가난에 대해서 생각했다. 도대체 가난하다는 건 어떤 의밀까? 나는 예전부터 가난은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잘 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도 모두가 잘 살아야한다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꼭 물질적인 풍요만으로 가능한 것인 아닌 것 같다. 모두가 물질적으로 넉넉 해지면 아름다운 사회가 될 거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모두가 흥청망청 소비하는 사회가 꼭 행복할 것만 같진 않다. 인간이 존중받고 자연환경과 더불어 사는 삶. 예전에도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계산하지 않는 인간관 계, 조금 불편하더라도 환경을 생각하는 삶. 그럴려면 지금 보다 사회가 조금은 진지하고 검소해 져야 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난 '가난'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가난'은 없어져야 할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기 보다 다시 생각하고 존중되어야 할 삶의 또 다 른 방식으로...... 공부방 사람들은 나에게 그런 질문과 해답을 주었다. 가난하다는 건 이웃들과 더불어 살기 위한 삶의 방식이라고 또 경쟁을 강요하고 소비할 것을 부축이는 이 사회에 대항하기 위한 삶의 태도라고. 나는 '가난'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삶의 참 기쁨을 느낀다. 소유하지 않으려는 마음, 경쟁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한다. 욕심없는 마음 은 삶을 윤택하게 한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기쁨도 맛볼 수 있고, 아무런 선입견이나 기대없이 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이렇게 사는 게 올바른 것인가?" 나는 매순간 갈등한다. 조금 은 솔직하고 욕심없는 나와 현실에 적응하고 안주하려는 나와. 하지만 두렵진 않다. 나와 함께할 좋은 이웃들이 있으니 말이다.

세상은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지만, 난 안락하기 위해 바둥거리며 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이웃들을 생각할 것이다. 이 작품이 내가 하고 싶은 얘기 모두를 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내 생각이 미숙 하고 또 얘기를 전달하는 능력 또한 모자라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는 사람들도 하여금 한번쯤 자신을 삶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변에 함께 해야할 이웃 이 누구인가 돌아보는 기회도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