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하다

 

류미례 / 2000년 8월 / 46분

연출:류미례

음악:김동범

도움촬영:이강길

제작:푸른영상

 

 

작품 내용

  14명의 성인정신지체인들이 생활하는 관악장애인직업재활센터. 지능지수 70이하로 분류되는 이들은 세상에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현대사회의 미덕인 '빠름'과 대비되는 '느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봉투에 안내책자를 넣거나 세차 일을 하는 이 곳 사람들은 그러나, 감정까지 메마른 것은 아니다. 짝사랑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 행복해하는 이들은 느린만큼 순수하다. 감독은 처음 누군가를 사귈 때 그러하듯이 센터의 친구들에게 머뭇거리며 다가서거나,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렇게 좌충우돌하며 보낸 한달의 시간을 흩어놓은 듯 보여주고 있는데 세 명의 주요인물이 등장한다.

  광수의 이야기. 33살인 광수는 손과 눈의 협조가 잘 안되어서 우편발송 작업때마다 쩔쩔맨다. 그러나 숫자 계산을 할 때에는 늘 다른 사람보다 앞서고, 가끔 심부름을 갈 때면 계산을 잘해내며 늘 행복해한다.

  상훈의 이야기. 자폐적 성향을 가진 상훈은 늘 누군가가 집에 데려다주어야 한다. 동생이 마중 나오지 않은 어느날, 혼자서 길을 헤매는 상훈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다. 사이코라고 놀리는 여고생들, 상훈을 무서워하는 어린아이들, 그리고 공짜로 붕어빵을 주는 아줌마, 이렇게 세 부류인데 이것은 정신지체인들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대표적인 시각일 것이다. 감독 또한 상훈이 붕어빵을 얻어먹는 데 돕는 역할을 하지만, 센터의 선생님으로부터 그런 동정은 자폐적 성향을 가진 상훈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준다는 주의를 듣는다.

  허중의 이야기. 허중은 은하가 좋아서 노래방 데려가고 선물 사주는 데 돈을 쓴다. 하지만 아버지가 실업자인 집에서 돈 생길 구석이 없으니 허중의 어머니는 답답하다. 허중의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재활센터에선 허중에게 돈 달라고 떼쓰지 말라고 하지만 허중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은하에게 선물을 사주고 싶기 때문. 자꾸 약속을 어기는 허중은 센터에서 쫓겨나기까지 하지만 변함없이 은하를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월요아침예배 때 회원들은 자신들의 소원을 말한다. 수퍼마켓, 돈 많이 벌어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 세차, 실밥따기... 그리고 회원들은 세상이 자신들을 온전하게 바라보기를 원한다.

 

연출 이야기

  작년 10월, 대한성공회 봉천동 '나눔의 집' 후원행사에서 상영될 영상물을 맡게 되었다. 후원회는 좁고 비가 새는 장애인센터를 좀 더 큰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열리는 것이었다. 중심이 장애인센터인지라 나는 그 곳에서 일주일 정도 생활을 같이 했다. 난 예전에 장애인 통신 동호회에서 짧게나마 활동한 적이 있어서 내가 장애인들을 모르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센터의 회원(그 곳에서는 장애인들을 회원이라 부른다)들은 정신지체인들이었고, 내가 만났던 통신인들 중에 정신지체인은 없었다.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지체인들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인 그들은 나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항상 그랬지만 난 장애인들을 만나면 주눅이 든다. 불편한 그들 앞에서 내 다리가, 내 팔이 멀쩡한 것이 죄스럽다. 센터의 회원들은 내게 스스럼없이 웃음을 던지고 내게 말을 걸었지만 난 그들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모습들은 내 기억에 오래 남았다.

  2000년이 되고 첫작업을 해야만 했을 때, 나는 자신없어하며 센터를 생각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얘기를 할만큼 애정이 있는가. 정말 나는 그들의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가. 혹시라도 소재주의에 빠져있는 건 아닌가. 짧지 않은 시간동안 그런 그런 생각들을 하다 3월, 난 다시 센터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내 사는 방식이 그렇듯 내가 잘하는 건 경험하고 느끼고 헤매는 것이다. 뭔가를 정리하거나 주장하는 걸 난 잘 하지 못한다. 그저 난 지쳐있던 날 따뜻이 맞아주었던 센터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싶었다. 넘어진 날 일으켜준 누군가의 고마움을 내 친구나 엄마에게 얘기하는 듯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어서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그 존재를 모르는 정신지체인들을 나는 만났고 그리고 이제 난, 그들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그리고 그들과 친구가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하고 싶었다. 편견도, 동정도 아닌 그저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이 다가갔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는 장애란, 격리를 하기 위한 선긋기가 아니라 뭔가 불편한, 또는 다른 것에 대해서 좀더 배려가 필요하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한달동안 함께 지내며 나는 그렇지 않은 세상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나 또한 그들 중의 일부였을 뿐이다. 이 영화는 정리되지 못한, 그 시간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