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주/1995/22분

 

작품내용

산업화 과정이 진전될 수록 점점 늘어나는 노인들. 노인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노인이 되면 겪게된다는 가난, 질병, 고독, 무위, 소외감을 지금 이땅에 살고 있는 노인들은 어떤 모양으로 감당하고 있을까.

이 작품은 이땅의 노인들의 현실을 여과없이 담고 있다. 특히 노인들의 솔직한 자기 고백을 들으면서 우리나라 노인들의 처지에 공감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연출 이야기

결혼을 하고 나에게 가장 부담이 되는 일은 아이를 돌보는 것과 시부모님을 모시는 일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결혼한 여성치고 아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다행히 아이를 잘 돌보아 주는 탁아소를 동네에서 발견하게 되어 한시름 덜게 되었다.

그러나 맏며느리인 나는 시부모님이 편찮으시기라도 하면 정말 막막하였다. 직장엘 나가지 말고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지, 아니면 출근을 해야 하는 건지. 결국 출근도 못하고 간호해야 하는 나의 마음은 우울하기 그지 없었다. 아이 돌보는 문제는 탁아소가 해결해 준다 하더라도 도대체 노인 문제는 몽땅 며느리의 책임이란 말인가. 다른 대책은 없는 것인가.

노인문제에 대한 관심은 이런 나의 처지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우선 노인복지 전문가들을 찾아 다녔다. 내가 놀란 것은 노인문제 전문가들이 무척이나 진보적이라는 사실이었다. 노인문제는 산업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농경사회에서는 노인이 가장 연장자로 대접 받지만 산업화 정보화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떠밀려서 찬밥신세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창 일할 55세의 나이에 정년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직장에서 쫒겨나게 되는 젊은 노인들.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정책은 "선 가정보호 후 사회보장"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가족해체 현상이 두드러지는 현대사회에서 모든 노인들에 대한 책임을 가정에만 떠 넘기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복지 예산 중 노인들을 위한 예산은 1.25%밖에 안된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생산력이 없는 노인들에게 이 자본주의 사회가 얼마나 인색해 지고 있는건지 ...

복지국가에서는 노인들의 빈곤문제는 연금으로 해결하고 있다. 외국의 고민은 노인들의 정서적인 만족을 높이고 무력감을 가지지 않고 노년기를 해방의 시간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었다. 특히 자녀가 부모를 돌볼 경우 간병인에 해당하는 월급을 자녀가 받을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해 놓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병드신 부모는 모두 자녀의 책임이며 치매나 중풍노인을 위한 요양시설 하나 변변히 없는 실정이다. 특히 자녀가 없거나 있어도 도저히 노인을 부양할 능력이 않되는 경우 대부분 노인들은 그저 일할 수 없는 늙고 병든 자신의 처지를 원망할 뿐 다른 대안이 없다.

노인복지 전문가들의 문제해결의 해답은 가정이 아니라 사회가 노인들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젊은이들이 노인이 될 때에는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좀 더 형편이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노인들. 전쟁과 빈곤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자식키우기에 급급하며 평생을 보내신 분들. 노후는 자녀가 책임져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노후 걱정을 한번도 안해 보신 분들. 이런 노인들에게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핵가족 제도는 형벌과도 같은 것이다. 아무런 노후대책도 없는데 자녀에게 의존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이 비디오에 출연하는 이소기할머니(91세) 신상옥 노인(70세)모자는 지하 사글세 방에서 살면서 하루도 일나가지 않으면 생계가 막막한 극빈층 노인들이다. 사실 달동네에서 혼히 볼 수 있는 노인들이다. 그리고 다른 노인들은 주로 동네 공원에서 하루 해를 채워야 하는 노인들이다. 자식이 부자건 가난하건 대부분 노인들은 월 6만원 이하의 용돈으로 살아가면서 공원에서 500원짜리 라면하나 사먹을 돈이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이런 우리나라 노인들의 처지를 보는 이들이 함께 느껴보도록 나레이션을 삭제하였다. 할아버지들의 솔직한 자기고백들을 통해 현재의 노인들이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가를 깊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여러 노인들과 노인문제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내 자신의 고민도 많이 해결이 되었다. 우선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노인세대들과 젊은 세대들이 갈등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 그리고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고 있는 노인들을 더 이상 가정에다 떠 넘기지 말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효도를 해야 한다는 것. 가난하고 병들고 고독하고 무력한 노인들을 더 이상 이 사회와 가정이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인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로 받아 들이고 한사람이라도 더 노인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할 때 노인복지제도의 변화는 그만큼 쉬워질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