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부터 17일까지 야마가타 다큐영화제 다녀왔습니다
푸른영상의 바쁜 작업일정과 재신임, 파병등의 혼란한 정세속에서 혼자만 훌쩍 갔다 온게 약간 캥기긴 했지만 제겐 아주 좋은 시간들이었고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간단히나마 보고를 올립니다
야마가타는 일본 동북부의 작은 도시인데 남한으로 따지면 원주나 철원쯤 될까요? 작고한 오가와 신스케 감독이 '나리타' 시리즈를 찌고 철거당한 농부들과 함께 이주하여 농사를 짓고 프로덕션을 만들어 활동하던 도시였는데 그가 시에 제안하여 87년부터 격년제 영화제가 생겨났죠
야마가타는 크게 두 경쟁부문이 있습니다 하난 인터내셔날이고 다른
하나는 뉴아시안 커런츠입니다
인터내셔날은 거장이거나 주류감독들이 참여하는데 대상인 플레허티 상은 우리돈으로 약 3000만원입니다.(제가 알기론 영화제중 가장 쎈 상금입니다) 올해는 약 50개국의 400여편이 응모를 했는데 그중 15편이 본선에 올랐습니다
뉴 아시안 커렌츠는 아시아의 비교적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는데
약 500만원의 오가와 신스케 상이 주어집니다. 아시아 30여개국에서 340편이 응모되었고 그중 30편의 장단편이 뽑혀 상영되었습니다
그외 다양한 특별 세션들이 마련되고 있으며 올해엔 오키나와 특별전, 뉴스릴 상영과 세미나, 특별 초청작, 일본 신작전,류쿠감독 회고전,특별 세미나등이 9개의 극장에서 쉴새없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전 이 아시아 뉴커런츠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심사위원들은 자기의 작품을 상영해야하는 원칙이 있어서 '송환'을 1회 상영했습니다.
덕분에 대접은 아주 잘받았지만 심사하는 일이 워낙 힘들었고 보고싶은 다른 부문 영화들은 거의 볼수가 없었습니다
뉴 커런츠의 작품들은 워낙 다양하고 자유분망하여 어떤 객관적 기준을 가지고 심사를 한다는 사실이 불가능에 가까왔고 대체적인 경향을 감잡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5분짜리에서 150분짜리까지, 8미리다큐에서 16,35미리 필름다큐까지 그 스케일이 천양지차였고 완성도가 우선이냐 가능성이 중요하냐의 중간에서 끊임없이 흔들려야 했습니다. 또한 작품의 형식들도 CF에서 액티비즘, 정통적 관찰영화, 시적 다큐, 유사다큐경향까지 정말 다큐멘타리의 영역은 넓고 넓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주된 흐름을 발견할수 있었는데 소재의 사회적 중요성이나
작품의 예술성보다 카메라와 대상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이 관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같이 심사를 맡은 나오미 카와세 감독(이분에 대해선 나중에 또 이야기할겁니다)도 그 점을 심사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즉 아무리 작품이 뛰어나더라도 감독과 대상과의 관계가 애매하거나 대상을 조금이라도 이용하고 있는듯한 혐의가 보이면 가차없이 제껴놓는다는 것이죠.
오가와상을 받은 Well Spring이란 작품은 뇌성마비 장애사내아이를 둔 중국 시골의 한 가족이야기였습니다. 경제적으로 곤궁하고 아이 때문에 일도 못나가는 아버지, 철없이 오빠를 못살게굴기도하지만 나름대로 놀아주는 누이동생, 도시에 취직하여 일주일에 하루만 올수 있을뿐이고 집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울음부터 터뜨리는 어머니.. 손자의 치료를 위해 소를 팔아야하지만 그 소가 유일한 삶의 친구인 할아버지.. 오다가다 들려서 아이를 걱정해주는 이웃들.. 자칫 동정적이거나 차가울 수 있는 감독의 시선은 장애아이를 둔 가족의 비극과 사랑을 냉정하면서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이 상징하듯 말라가는 우물에서 물한바가지를 퍼올리는 아빠를 지켜보며 감독은 희망을 간절히 빌고 있었습니다. 그다지 새롭지도 않고 정치적이지도 않은 관찰적 영화이지만 이작품으로 결정한건 바로 감독과 장애가족과의 관계가 아주 가까우면서도 조심스럽다는 점에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장려상을 받은 두 편의 영화가운데 하나는 'Hard Good Life'라는 대만작품이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아해할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진 학생 작품이었습니다. 저도 썩 마땅친 않았는데 카와세 감독이 우기는 바람에 제가 양보한 셈이죠. 그러나 아빠와 단둘이 살면서 서로 대화가 없는 절박한 상황을 카메라로 돌파해 보려는 감독의 의도가 예쁘다는 점엔 저도 공감을
했습니다. 감독은 촬영하면서도 섯불리 아빠에게 말을 걸지 않고 그저 따라다닐 뿐이었지만 둘은 조심스레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른 하나는 The old Man of Hara 라는 이란 여성 감독의 단편 작품이었는데 혼자 살면서 새우를 잡는 할아버지의 일상을 아무런 정보제시없이 뛰어난 영상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것도 제 취향이 아니었지만 노인의 얼굴, 특히 마지막, 노인이 누군가의 무덤인지도 모르지만 기도를 드리고 쓸쓸히 걸어가는 장면이 강하게 뇌리에 남는 작품이었고 1946년생
씩씩한 할머니가 만들었다는데 저는 존경과 동병상린(?)을 느꼈습니다
내가 '민' 작품들은 일본의 'At the End Of World'라는 간접적 피폭자들의 문제를 다룬 작품과 말레이지아의 'Big Durian'이란 작품이었습니다
전자는 이라크와 미국 일본을 돌며 핵실험과 열화학탄의 위험을 경고하는 작품이었는데 약간 지루하긴 했지만 시사적인 중요성을 높이 샀습니다
그러나 TV 다큐와 유사하다는 강한 반대에 밀려 양보했고 후자는 87년도에 발생한 작은 사건을 가지고 기발한 상상력과 만화, 픽션등을 섞어 말레이지아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감독의 견해를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영화였는데 끝까지 밀었지만 Special Mension 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결국 제가 많이 양보한 셈인데 이유는 우선 아침9시부터 시작하여 6시간동안 논쟁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고 오후3시까지는 어쨋든 심사를 끝내야 했습니다. 상대였던 가와세 감독의 고집은 정말 보통이 아니였습니다.(나중에 알고보니 곱상히 생긴 외모와 달리 성질은 괴팍하다고 소문난 여자랍니다.그러나 그녀의 영화 letter from a yellow cherry blossom은 죽어가는 한 사진비평가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좁은 병실에서 두려워하면서도 차차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그녀의 뱃장과 다큐멘터리에 관한 진지한 대화등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녀가 임신중이었기 때문에 난 화가 나도 담배를 필수 없었고 화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타협이 불가피했고 상은 '무난한'영화들에게 돌아가게 된셈입니다. 심사를 많이 해보았지만 이번처럼 강적을 만난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한국작품들 이야기를 하자면 5편이 출품되었는데 모두 평균이상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지만 모두 수상권엔 들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아까 언급한 관계성에서는 특별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 없었습니다. '그날 그 이후'란 올 부산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이 눈에 띄었는데 충격적 이야기나 기술적 완성도에서 뛰어 났지만 '관계성'의 측면에서 볼때 여러가지 의심을 하게 만들었고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감독의 불성실한 답변이 더 그 의심을 굳히게 한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성난 관객들은 극장로비까지 나와 감독에게 가시돋힌 질문을 퍼부어 댔습니다 (자세한 내용과 판단은 직접 보시는게 낫겠죠. 한번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송환' 상영은 별다른 홍보가 없었던 탓에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감독들, 지한파 일본인, 총련계로 보이는 교포들이 주 관객이었습니다. 반응은 좋은 편이었고 2명의 일본인과 한명의 교포로부터 상영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본인은 집요하게 '북의 일본인 납치'에 대한 내 입장을 물었고 '통일에 대한 이론'등 어려운 질문을 내놓아 진땀을 빼기도 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현재 일본에서 북에 대한 언급은 민감한 문제였고 또 그 때문에 이작품을 상영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외도 재미 있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나머진 다음 기회- 다큐보기시간이나 김영식 팬클럽모임등-로 미루어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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