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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장선우씨의 인터뷰입니다
번호 89 분류   일반 조회/추천 313  /  130
글쓴이 goodnine    
작성일 1999년 10월 11일 17시 53분 58초
장선우 감독은 요즈음 새 작품의 시나리오 구상과 휴식을 겸해서 지방에 머물고 있다. <한국영화 씻김>의 시사회가 있던 날 서울에 올라온 그는 공개 석상에서 별 감흥이 없는 목소리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보도진의 접근도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최초로 한국영화 역사에 대한 기록영화를 만들었다는 부담 때문일까, 아니면 여유일까. 장선우 감독을 따로 만나 영화 <한국영화 씻김>에 대한 그 자신의 생각과 한국영화관을 들어 보았다.



- 처음 해보는 기록영화인데 어려움은 없었나.



= 왜 없었겠나. 혼란의 연속이었다. 난 기록영화에 대한 노하우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처럼 풀고 싶지도 않았다. 신의 목소리처럼 내레이션이 깔리고, 감동을 쥐어짜는 그런 방식은 싫었다. 다큐멘터리는 그런 게 아니다.

우리에게 기록영화 전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잘됐다는 외국 기록영화를 보니까 더 혼란스러웠다. 결국 좋은 기록영화는 다 시간싸움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그만큼 작품도 좋아진다. 그런데 시간은 별로 없고… 암담했다.



- 역사의 현장을 도는 구성은 원래부터 착상된 것인지.



= 꼭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사전에 없었다. 여러 구성작가의 안을 읽어봤는데, 너무 텔레비전 스타일이었다. 아기자기하지만 소녀 취향이고… 고민하던 중에 평론하는 이정하씨를 만났다. 감이 잘 맞았다. 그가 전체 구성의 초안을 맡았고, 이효인씨가 한국영화 역사 부문의 자문을 맡아 줬다.



- 전라도 부안 지방(동학 혁명의 발원지)에서 영화가 시작하는데.



= 그건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영화 100년을 회고하려면 동학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년이 동학 100주년이다. 우리나라처럼 외국의 침략과 더불어 현대사가 시작된 경우도 드물 것이다. 지리산도 찍었고, 6·25 관련 기록 필름도 확보해두었지만 시간 때문에 다 뺐다. 그리고 광주가 나온다. 우리 역사가 그렇게 왔는데, 그럼 영화는 뭐냐, 뭘 했느냐, 그걸 묻고 싶었다.



- 이제까지의 한국영화를 부정하는가.



=60년대 한국영화엔 가능성이 있었다. 심지어 일제 시대에도 그랬다. 김유영, 윤봉춘 등의 감독이 있었으니까. 그들이 수감됐었던 서대문 형무소가 화면에 비치는 건 그런 의도다. 우리 영화 역사에 그런 맥이 있었다. 맥이 끊긴 건 70년대다. 그때부터 한국영화는 우리 현대사 속에서 망가진 채로 있었다. 그래서 난 한국영화를 돌아보기가 싫었다. 그건 괴로운 일이니까. 하지만 한국영화 현대사를 훑다 보니 실낱같은 흐름이 잡혔다.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하얀 전쟁>까지 오는 흐름이 과거의 맥을 잇고 있다는 생각이다.



- 과거의 한국영화를 많이 봤는가.



= 이효인씨가 쓴 책을 읽어 봤는데, 거기에 나에 대한 비난이 나온다. 한국영화 역사를 모른다고(웃음). 맞는 말이다. 김유영 감독의 이름도 이번에 처음 들어서 알았다. 60년대 영화도 잘 모른다. 많이 못 봤다. 많이 못 봤지만, 60년대에는 그래도 한국영화가 있었다는 감은 있다. <갯마을> <안개> <마부> 등의 영화는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한다. <맨발의 청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내 사춘기를 흔들어 놓았던 영화다.



- 60년대 한국영화가 왜 좋은가.



= 그 당시 영화는 대중들과 친화력이 있었으니까. 대중에게 호소력을 지니면서도 삶과 밀착해 있었다.



- 여기에 나오는 영화들을 고른 이유도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되나.



= 고르기가 만만치 않았다. <미워도 다시 한번>류의 영화는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 그럼 이명세 영화의 양식미는? 다 다뤄보고는 싶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까 잘 안 됐다. 그 영화들이 싫어졌다. 그래서 선 굵게 가자, 역사 속의 한국영화 쪽으로 가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 배용균 감독의 영화도 언급이 안 되던데.



= 난 예술성과 사회적 기능이 통합된 것을 신뢰하지 예술성에만 집착하는 건 싫다.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원래 우리 전통 예술은 예술성 따로, 사회적 기능 따로, 놀이 따로 이렇게 나눠지는 게 아니다. 굿이 그렇지 않은가. 놀면서 즐기고 그러면서 예술성과 사회적 기능도 다 해낸다.



- 처음과 끝에 ‘씻김굿’이 나오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인가.



= 난 굿이라는 포용력있는 양식에 한국영화에 대한 애증을 실어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는데, “고리타분하게 굿이 다 뭐냐”고 주위에서 저항이 많았다. 하지만 굿은 절박한 의미로 내세운 것이다. 오락과 예술과 사회적 기능이 근본적으로 같은 게 우리 전통이다. 이게 다 망가졌다. 그래서 한바탕 다 씻어내고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서양에는 이런 게 안 된다. 모더니스트들이 세상을 다 쪼개놨으니까.



- 장선우 감독 본인의 영화에도 모더니스트적인 성향이 있지 않은가.



= 그게… 곤란한 문제다. 90년대를 어떻게 봐야 하나, 방법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됐다. 지금은 리얼리즘의 통일된 필터로 세상을 보기가 불가능한 시대다. 분열된 세상을 부분만 조악하게 반영하는 데 그칠 수 있다. 그걸 넘어서고 파괴하려다 보니까 모더니스트적 성향이랄까, 그런 게 내 안에 들어와 있다. 누군가가 쓴 평문을 읽으니 나를 포함한 90년대의 한국영화 감독들은 ‘타살된 주체’라는 어려운 말을 썼는데(웃음), 일리가 있다. 조각난 세상을 부정하는 방식을 찾다 보니 모더니스트적 요소가 보이는 거지.



- 그건 서구에서 이미 밟았던 전철인데, 그럼 대안이 있는가.



= 없는데…. 단, 이런 전제는 있다. 영화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이다. 현실이 이런데 영화가 대체 뭐냐. 영화가 현실에 대해 답을 내릴 순 없지만 시각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다면 그것도 넓은 의미에서 참여다. 관객은 시원한 걸 원하고 이와 영합하고 싶지만, 아직은 천차만별로 물고 뜯을 수

있는 영화가 더 재미있고 의미있다.



- 이 영화에 나온 다른 감독들과의 인터뷰에서도 장 감독은 계속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다른 감독들의 답변이 꼭 장 감독의 의도대로 나온 것 같진 않은데.



= 각 감독마다 세 시간에서 한 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다. 그들 작품에 대한 이야기와 영화 외적인 이야기를 하나씩 골라냈다. 그렇게 해서 한국영화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고, 어느 정도는 됐다고 본다.



- 여균동 감독의 발언이 장 감독 본인의 견해와 많이 일치하는 듯이 보이던데. 장기수 얘기를 찍고 싶지만 자본가와 만나서 뽀빠이 얘기를 찍어야 하는 감독의 고민말이다.



= 이런 곳에서 영화를 계속해야 하나라는 회의를 느끼지만 여하튼 작품은 만들어야 한다. 한국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입장이 제각기 다른 것도 한국영화의 또다른 현실이다. 임권택 감독은 자기 완성의 길을 가겠다고 했고, 여균동 감독은 우울한 현실을 코미디로 담겠다고 했다. 그게 꼭 세대차이만은 아니다. 관점의 차이다. 박광수 감독의 입장은 어떤가. 그는 관객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예술가의 길을 가겠다는 거고 자기 색깔을 지니겠다는 거다. 난 관객을 믿을 수도 없지만 안 믿을 수도 없다는 입장이고, 여하튼 길을 찾겠다는 쪽이다. 그런 면에서 여균동 감독과는 잘 통하는 편이다. 둘이서 얘기를 많이 한다. 리얼리즘이 극복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거의 비슷하다.



- 편집 배열로 보더라도 굿하는 장면이 나온 뒤에 주요 한국영화의 장면이 이어지면서 여균동 감독의 발언이 깔린다. 인간들 사이의 상식적인 교감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라는 발언말이다. 이 영화의 주제를 요약하는 듯한 인상이다.



= 좋지 않은가. 터무니없이 낙관적이지만 맞는 말이고 그래서 좋다.



- 이상한 말이지만 ‘씻김’과 영어 제목 ‘길 위의 영화’는 둘 다 영화에 들어맞는 것 같다. 새 출발을 역설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한국영화는 여전히 유랑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국영화가 어디로 가야 할 것 같은가.



= 나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사실 점점 회의적이 돼가는 게 내 고민이다. 나한텐 이 시대가 그렇게 보인다. 욕망을 통해 영화로 인간을 부수고 다 드러내버렸는데, 개운하지가 않다. 전에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 속에서 살았었는데… 이젠 절망 문턱에까지 갔다.

난 짖궂다. 음흉한 의도도 있다. 장난기지. 확 가서 무책임한 질문 던지고 물러날까, 아니면 이 기회에 분위기를 바꿔버릴까, 기로에 서 있다. 가끔은 <산타클로스는 있는가> <서울 예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 유치하고 어려도 맑고 고운 소리를 내던 그런 시절로 말이다.



- 너무 일찍 돌아가는 건 아닌가.



= 물론이다. 돌아갈 수도 없다. 덕지덕지 절어서 돌아갈지, 의도적으로 피할지 그건 모르겠다. 난 길 위에 서 있는데… 영화에 대한 이상은 있다. 그걸 찾을 때까지 계속 가는 수밖에 없다. 어디로 가야 하지. 날 좀 머무르게 해주었으면(웃음).



김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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