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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언어는 영상을 빈곤하게 한다 - '나는 행복하다'를 보고
번호 872 분류   일반 조회/추천 522  /  167
글쓴이 장우석    
작성일 2000년 11월 26일 14시 37분 43초
우리는 영상을 보고 언어로 평이나 느낌을 이야기 한다.

물론 누군가는 영상을 영상'언어'로 이야기 하면서 서로간의 차이보다 동일성을 강조한다.

조직화된 영상은 분명한 언어다. - 좀 다른 언어.

영상은 침묵의 언어이다. 영상의 강한 힘은 바로 이 침묵속에서 나온다.

그리고 나약함 또한 이 침묵속에서 나온다.



영하를 본 후, 이 틀 정도 지난후 자료집을 읽게 되었다.

아, 류미례 감독은 글을 잘 쓰는구나. 예전에 잡지 기자였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나는 자료집을 읽으면서, 왜 영화 제목을 '나는 행복하다'라고 정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자료집엔 영상이 담아내지 못했던 많은 에피소드와 작품제작일정, 그리고 작가의 다양하고 끊임없는 고민, 편집 뒤의 시사회에 대한 이야기까지 영화가 말해주지 않은 많은 것들이 실려있었다. 자료집을 읽게 되니 비로소 일련의 제작 과정들과 감독의 고민하는 모습들이 시간속에서 일렁이는 것을 느낀다.

여기엔 두가지가 있는 것 같다.

다큐자체의 상대적 빈곤함과 제작의 어려움. 작품만을 보았을때는 감독의 주제와 구성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작품제목과 이야기 내용을 서로 관련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의 '나는 행복하다'는 엔딩은 심한 비약으로 다가왔다. 이제 역으로 자료집속에서 영화를 보아야 할 것 같다.

자료집 내내 나는 감독의 끊임없는 고민과 마주쳐야 했다. 중심고민은 '장애에 대한 감독 자신의 올바른 태도'에 대한 문제였다. 명확하지 않고 선택되지 못한 그것이 주제와 구성의 혼선을 불러왔고, 회원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이어졌다. 스스로 인정하듯이 이는 중심의 부재로 이어진다. 그러나 자료집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일련의 고민들을 통해 감독이 나름대로 일정한 주제의식과 장애에 대한 태도를 정리했고,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맥락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이끌어 내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가졌던 장애자에 대한 '배려' - 배려는 높은 위치에서 낮은 곳으로 배푸는 시혜의 의미를 담고 있다 - 라는 언어를 스스로 벗어버리는 성찰의 결과도 보인다.



영상의 상대적 빈곤함은 감독의 애매한 위치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장애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카메라의 시선과 위치, 그리고 회원과의 관계설정에 고민하면서 감독은 어디에 정확하게 서 있어야 할지를 몰랐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이 애매한 위치는 자료집에서 자신의 고민들과 입장들을 시간속에서 풀어내어 일정한 매듭짓기로 옮아갔듯이, 영화속에서도 이것들이 충분히 녹아들었어야 하는 아쉬움으로 이어진다.

결국 '나는 행복하다'라는 주관적인 주제의식이 갑작스런 비약으로 다가오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주제의 자연스런 침투가 필요했다고 본다. 촬영기간이 다분히 짧았기 때문에 의도했던 기획안을 충분히 담아내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감독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되었지 않나 싶다. 그것이 짧은 시간속에서 회원들의 일상을 통해 감독이 나누고자 했던 이야기를 영화 감상자들과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였을 것이다.

영상 외적인 감독의 개입은 언어로 이루어진다. 필요한 좋은 말들은 모두 자료집에 등장한다. 그리고 정작 영화속에서는 필요했던 말들을 너무나 아꼈던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를 가편집 상태에서 한번 본적이 있었다. 그때도 상당히 주관적이 영화이고, 그런 것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들의 대화는 잘 알아들을 수 없어서 자막을 넣어 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했더니 그럴 예정이라고 했다. 이때 보았던 영상들보다는 최종 완성본에서는 그때 등장하지 않았던 자막들이 많이 삽입되었다. 몇개의 에피소드에 있어서 알아보기 힘든 상황에서는 친절히 자막을 넣어주는 배려도 해 주었다. 그러나 이 대문짝만한 자막은 영상의 자연스런 연속을 오히려 방해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아가 영화속의 주인공들과 보는 이들을 더욱 더 멀어지게 만들는 '격리'의 언어 장벽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상황설명이 그런 커다란 자막으로 반드시 필요했을까 라는 의구심도 가져본다. 감독의 언어배려는 결국 감독이 넘고자 하는 이 '배려'의 한계를 다시 생각나게 한다. 글은 말보다 친근하지 않는 거리감을 준다. 이 영화에서 글은 그 구성과 의도에 있어서 적절한 역할을 하므로써 영상에 보다 큰 힘을 실어주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감독의 친근하며 자연스런 나래이션을 곳곳에 삽입하므로써 영상의 간극들을 메워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그러면서 작품의 주제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고.(반대로 서경화 감독의 '기차길 옆 공부방'에서는 나래이션의 과잉이 느껴진다. 감독은 충분한 시간속에서 나름대로 탄탄한 영상을 구축한 것 같았는데, 너무 접근된 감독 자신의 나래이션으로 영상의 힘을 말로 이전시켜 버린것 같다.)



류미례 감독은 글을 썼던 경력대로 말보다는 글을 더 좋아함에 틀림없다. 하지만 감독의 작품제작 과정속의 행복한 고민과 실천속에서 보여지듯이 자료집 속의 쏨씨 좋은 글은 영상으로 천천히 녹아들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속에서 언어는 최대한 간결해야 한다고 본다. 영상 자체로 말하는 비중을 늘려야 하겠지만, 이는 작품의 성격과 감독의 위치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특히나 영화를 배워나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언어가 필요 이상으로 많아 질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애매한 내용으로 매끄럽지 않은 영상을 나열하여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충분히 담지 못 할 바에는.

결국 이런 문제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 본다. 영화제작에서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은 언어의 힘을 줄이고 영상 자체의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



대상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가능할까?

법정스님의 말마따나, 그것은 언외에 있는 것이고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마음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그 이전에는 모두가 오해라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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