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영상 홈페이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Top
제목 그 작고 힘없는 생명들
번호 491 분류   일반 조회/추천 393  /  158
글쓴이 류미례    
작성일 2000년 05월 10일 21시 46분 05초
그 작고 힘없는 생명들을 생각하며



1.문주란

어느 때부터인가 엄마는 화분에 깃든 파란 풀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시골에 갔다 오셔도 우리보다는 화분을 먼저 찾았다. 화분에 심어진 풀들도 그랬다. 내가 열심히 물을 줘도 엄마가 장기간 집을 비우면 시들시들한 것같았다. 그리고 엄마가 오시면 파릇파릇 생기를 띠는 것같았다.



얼마 전에 축하할 일이 생겨서

집에 화분들이 많이 들어왔다.

넓지 못한 집이라서 엄마는 화분 한 개를 내놓으셨다. 나는 그러면 안된다고 했지만 엄마는 바깥이 좋을 수도 있다고 그러셨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사무실 후배가 집에 화분같은 거 있으면 작업실에 놓자고 해서 엄마한테 그 화분의 행방을 물었다. 나는 그 풀의 이름이 문주란인 것은 처음 알았다. 그 전엔 다 그게 그거 같아서 잘 몰랐는데 엄만 그러셨다.

"문주란? 아 그거 죽을 거 같아"



난 그 때부터 엄마한테 뭐라 뭐라 했다.

엄마가 없으면 시들시들했던 그 풀들을

엄마가 오면 반가워서 바짝 일어서던 그 풀들을

그렇게 내놓다니 엄마도 참 독한 거 같아.

문주란이 너무 불쌍하다.



엄마는 애써 말씀하셨다.

아니다 원래 시들시들했었다.

바깥 바람 쐬라고 햇볕이 좋아서 내놓은 거다

엄마도 자주 살폈다....

뭐 그런 그런 말씀을 하셨다.

어쨌든 며칠이 지나고 뒤꼍 베란다에는

텅빈 화분이 놓여있다.



2. 올챙이

꼬마 조카가 벌써 3학년이 되었다.

숙제가 개구리알을 채집해오는 거였다.

내가 사는 광명은, 특히 우리 집은

개발지 끄트머리라서 바로 앞에 밭과 논이 있다.

오빠와 새언니, 나, 동생, 그리고 조카들 둘은

일요일날 들판을 헤매며 개구리알을 찾았다.



가뭄이라는 게 느껴질만큼

논바닥은 갈라져있었고

논개울엔 물이 거의 없었다.

어렵게 어렵게 개구리알을 발견했고

우린 그것을 집으로 가져왔다.



영양분 속의 까만 알들은

벌써 형체를 갖춘 것들도 있었고

조금만 더 있으면 나올 것같았다.



늦은 밤, 돌아와 대야를 보니

까만 점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까만 점은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통을 툭툭 건드려도 바닥에 떨어진 까만 점들은

움직이지않았다.

언니한테 물어보니

올챙이들이 잠이 들어서라고 했다.

그런 걸로만 알았다.



나흘이 지났다.

이제 헤엄치는 점들은 2~3개 정도밖에 없었다.

자는 것이 아닌 것같았다.

우린 어항의 산소배출기를 대주거나

어항의 물로 갈아주려 했지만

생명이 남은 알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처음의 논으로 돌려보내는 것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뒤꼍 베란다엔

문주란을 담았던 화분과

개구리알이 담겨있던 대야가

텅 빈 채로 놓여있다.

주인을 잃은 텅 빈 집처럼.

그 작고 힘없는 생명들에게

미안하다.

  
쓰기 목록 추천 수정 답글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