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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긴급하게 알려드립니다
번호 29341 분류   일반 조회/추천 2671  /  480
글쓴이 김태일    
작성일 2007년 11월 19일 10시 20분 37초
20년전 신촌 우리마당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며 청하대 앞에서 김기종씨가 분신하셨다고 합니다. 초창기 독립영화 활동에 많은 역할을 하셨던 분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글을 참고하시구요.
지금 현재 중환자실에 계시다고 합니다.
독립영화인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아래의 사실을 펀글로 관심있는 여러분에게 알려주시고 전달하여 공유하기를 기대합니다.

우선, 처음으로 이렇게 메일을 통하여 이같은 소식을 전하게 된 것에, 아직까지 본인도 당황스럽고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할지 경황이 없을 뿐입니다.

지난 금요일 낮에 후배로 부터 일상적 핸드폰의 통화처럼 "지금 통화할 수 있어요"로 시작하는 전언은 뜻밖에도 김기종씨가 분신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 재차 확인하여 들은 것은 분신이라는 확연한 단어였습니다. 치열한 8. 90년대의 민주화 투쟁도 아니고 자기 목숨 바쳐서 온 몸을

불살르며 저항한 노동자도 빈민도 아닌, 우리가 기억하는 김기종씨가 분신하였다는 것은, 나에게 전혀 상상의 여지를 제공하여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만, 포기하는 심정으로 장례식장은 어딘가. 지금 하고있는 일이 있는데, 오늘밤 문상가야 하나 내일 가야하는 생각이 일상처럼 스쳐지나 갔습니다.

우리마당 지기 김기종씨를 기억하는 세대는 대부분은 40대를 넘어선 어떻게 본다면, 사회에서 중견에 집에선 가장으로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위하여

서로가 바쁘게 바쁘게 앞만을 보고 달려왔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일과 연관된 인맥에 치이다 보면, 가끔은 20대 시절의 우리마당의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과게에 안주한 채, 길에서 지인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라도 만나면, 다음 약속을 공수표처럼 남발하고 총총히 제갈길로 갑니다.

여하튼 그런 단상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사람으로 극단적 분신을 선택하였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잠시 허공에 붕 뜬 것처럼 멍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중 다행이라고 할까요, 다행이라고 하기에 그 고통을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중환자실에서 부모님에게 숨긴채 홀로 투병중이라고 합니다.


순간, 더 이상 아무런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한 장면같은 현실이 너무도 끔찍하여, 누구라도 정말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결국, 처음으로 영등포시장 부근의 한강성심병원을 택시로 달려가는데 분신의 몰골이 떠올라서 선뜻 후배에게 먼저 면회를 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 중환자실 앞에서 5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을 면회하기 위하여 가운을 갈아입고 손을 씻으며 낯선 슬리퍼를 바꿔신으니 점차 긴장이 밀려왔습니다.

의식도 없을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여야 하나... 그렇게 병상 앞을 주저 주저하며 나아가니 온몸을 붕대로 감은 환자들 가운데 눈이 마주쳤습니다.


갑자기 눈앞이 하얘지면서 울먹이는 초라한 자신이 김기종씨에게 한 말은 바보같은 사람.... 바보같은 사람이라는 연신 중얼거림 뿐이 었습니다.


그래도 오랫만의 지인의 병문안 이라고 의식의 끈을 놓지않고 아는 척을 하려는 김기종씨의 시선을 애써 피해 보려고도 하였지만, 다른 곳에 눈길을

주기에는 온 몸이 붕대에 링겔병 등의 의료기구에 둘러쌓인 을씨년스러운 풍경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이 말을 전했습니다.


그동안 김기종씨 마음의 고통을 몰랐었던 우리가 무심해서 미안하고, 미안하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다시 살아남아서 일해보자고 살아야 한다고......

더 이상은 아무런 할 말이 없었습니다. 도무지 적절한 단어의 조합이 되지 않아서 다시 오겠다, 우리가 연락하여 다시한번 찾아오겠다만 했습니다.


그렇게 병원 앞에서 담배 한대로 자신을 안위하며 김기종씨를 릴레이 식으로 면회하고 있는 성대 법학과 민주동문회의 후배라는 분을 기다려서

만나보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대강 듣게 되었습니다. 88년도의 우리마당 테러사건,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에 청원, 지난 8월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 당일 날 몇시간 전에 가까운 지인에게만 보낸 유서로 날아 든 메일, 그리고 결국 청와대 앞에서 분신.... 이라는 시간적 연대기였습니다.


지난 10월 19일을 전후하여 중환자실에서 2주동안 생명의 고비를 순간 순간 넘기고 이제는 합병증으로 생명을 우려하는 안타까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중환자실의 면회를 오더라도 삶의 의지를 갖도록, 희망적이며 힘이 될 수 있는 말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까지 들었습니다.

앞으로 몇 달을 더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면회도 하루에 12시부터 30분까지, 오후 6시 30분부터 7시까지 2회로 제한된 상태에서 자해를 하였기 때문에

병원비의 보험처리도 어려워 1주일에 천여만원이 들어간다고, 그래서 누가 보증하여 1주일씩 임시로 메꿔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이 눈앞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좋든 나쁘든 김기종씨를 기억하는 기억할 수 있는 주변의 영화 쪽 지인들 가운데 이 상황을 함께 알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누가 있을까

하고 생각이 미치자 어차피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몇몇 지인들에게만 제한하여 연락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임시대책위가 생각났습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김기종씨의 투병기금 마련에 십시일반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역할을 분담하고 연락하여 상황을 공유하고

릴레이식으로 면회는 못하겠지만, 가능하다면 5분이라도 면회를 갔을 때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면회 요령과 날짜를 조정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런 과정을 한 번씩은 겪은 다음에 다음 주 11월 14일(水)과 15일(木) 오후 8시, 2회로 연이어 혹은 1회라도 저희 작업실에서라도 대책위를 구성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임을 갖고 전후 사정과 상황을 공유하여 최소한 11월 말까지 5백만원을 12월말까지 5백만원을 모금하여 전달하자는 것입니다.

그럼, 이 같은 제안에 면회를 갔다오고 투병기금 마련에 동감하는 김재범, 낭희섭, 홍기선이 각 10만원씩을 모금으로 역할을 분담하여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다음 주 11월 14일(水)과 15일(木) 오후 8시 모임의 결정까지 임시 간사의 역할로 김재범, 낭희섭, 이경화가 자원 추천함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임시 제목 : 김기종씨 분신 임시대책위 (가칭)

모임 일시 ; 11월 14일(水)과 15일(木)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2회 중에 1회를 참여할 수 있음으로 상황공유와 투병기금 마련에 동참하도록 한다)

모임 장소 : 지하철 2호선 동대문운동장역 2번출구로 나오고 한양공고 정문에서 신당동쪽으로 500m 직진. 성동여실고와 파출소를 지나면 보이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국민은행(6층건물) 아니고, 그 옆의 복천빌딩 5층 502호 (1층 입구에 숯불갈비집 식당이 있음)
모임 목적 : 김기종씨 분신에 의한 상황 공유와 이후 투병 기금 마련을 위한 역할 분담

임시 간사 : 김재범 (019-327-5360) 낭희섭 (017-269-9654) 이경화 (019-378-5465)


그밖에 의견이 있는 사람은 이 메일 혹은 직접 연락하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지난 10월 19일자 인터넷 검색으로 관련 기사와 김기종씨의 유서 및 관련 자료를 아래에 게시하고 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랍니다.


“20년전 ‘우리마당사건’ 진실 밝혀달라” 분신
김기종씨 일인시위 도중


노현웅 기자

재야 문화운동 단체인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47)씨가 1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1988년 괴한들이 이 단체를 습격하고 여학생을 성폭행한 이른바 ‘우리마당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분신 자살을 시도했다. 김씨는 온몸의 39% 가량에 2∼3도의 화상을 입었으며, 병원 쪽은 “2∼3일 가량 경과를 지켜봐야 소생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8월부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 오던 김씨는 이날 오후 1시28분께 소형 걸개천과 옷에 불을 붙여 분신을 시도했으나, 청와대를 경비 중이던 의경이 달려와 휴대하고 있던 소화기로 불을 껐다. 오후 2시께 구급차에 실려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에 도착한 김씨는 응급치료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김씨는 이날 지인들에게 보낸 유서에서 “수사기관과 언론, 국회는 사건의 진실을 감추려고만 하고 있다”며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와 시민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우리마당 사건은 1988년 8월 괴한들이 서울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를 주장하던 우리마당 사무실을 습격한 사건으로, 거듭된 수사 요구에도 아직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2004년에는 북파공작원 출신 이종일씨가 <시사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북파 공작원들의 소행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씨와 함께 활동해 온 시민단체 ‘영화마당’ 이경화 대표는 “당시 인권 변호사로 알려졌던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사무실에 찾아와 무료 변론을 자청하고 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며 “김씨가 오늘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것은 민주화 세력이 권력을 잡은 뒤에도 여전히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것에 대한 항의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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