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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번호 257 분류   일반 조회/추천 321  /  138
글쓴이 류미례    
작성일 2000년 01월 06일 19시 04분 34초
안도현을 좋아한다.

안도현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시에 대한 내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시보다는 소설을, 산보다는 바다를 더 좋아하는 내게 그의 시들은 나를 깨뜨리며 다가왔다.



시를 쓰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의 시는 참 좋았지만 그 사람의 생활은 싫었다. 생활과 일치되지 않은 시가 감동이 되는 것이 난 싫었다. 그 상황은 시 마저도 불신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내가 느낀 시였다.



그러다 안도현의 시를 보았다. 생활에 천착한 그의 솔직하고도 애절한 울림은 내가 힘들 때마다 안도현의 시들을 찾게 만들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 시집을 접하고 많은 시간이 지난 올해, 난 하얀 여백으로 남겨진 시집의 첫 장에 이렇게 썼다. '항상, 나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하는 이 책에 감사한다'라고.



94년 2월에 나와 2천년이 된 지금까지 항상 내 가방 속에 들어있는 안도현의 시들은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친" 나에게, 패배감에 빠져 세상이나 사람으로부터 격리되기를 바라는 내게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다"라고, 애써 위로하려 했다. 그가 건네는 말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내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은 자기애에 빠져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쨌든 길고 긴 시간이 지난 다음, 내가 찾아낸 다짐은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세상에 대해서 냉소적이지만 말자"는 그것 하나였다.



^^; 냉소의 반대편으로 너무 치달았나? 97년 어느날, 시인이 문예아카데미의 시창작반에 초대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뒷풀이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열명 정도의 수강생들 틈에 낀 나에게 사람들이 소개를 청했을 때, 난 시가 좋아서, 그 시를 쓴 사람이 보고 싶어서 왔다고 그렇게 솔직하게 말했다. 시인은 무척 당황해하였고, 나는 무척 미안해졌다. 그 뒤로 그를 볼 기회는 없었다.



안도현이 새로 책을 냈다. 좋아하는 시들을 모아 낸 책 이름이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이라니. 시인은 시인이다. 난 백석의 시가 당연히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진 않았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는 말을 백석의 시에서 인용했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찾아보았지만 딱 그에 맞는 말을 찾진 못했다. 대신 나한테 와닿은 백석의 시를 적는다.



** 참고로 <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은 '나무생각'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왔고, 5천원이군요. 백석의 다음 시는 그 책엔 없답니다. 여러분들도 좋아하셨으면 좋겠군요.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

白石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에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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