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사과부터 드립니다.
김상준님이 하던 일을 푸른영상으로 돌리게 만든 사람이 저였으니 말입니다.
상준님의 글 가운데 "광열님이 어떻게 했길래 그리 됫는지"라는 표현이 있는데, 바로 그 "광열"이 바로 저입니다.
상준님에게 사과드립니다.
상준님은 처음 이 일의 아이디어를 냈고 또 초기에 무척 의욕적으로 일을 하셨습니다.(저와 친하게 지내기도 했었지요.)
하지만 이 일로 말미암아 가슴에 상처를 받으셨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제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그 중간 과정이 어떠했든 말입니다.
또 푸른영상의 모든 분들께도 사과드립니다.
저는 푸른영상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좋은 작업을 해 오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푸른영상이 어느 형태로든 비난을 받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저 자신에 관해 간략히 말씀드려야겠군요.
저는 김종태 열사 추모 사업을 위한 모임 <김종태의집>의 한 구성원입니다.
<김종태의집>은 그러나 잘 짜여진 조직을 갖지 못하고 그저 필요에 따라 서로 연락하여 모여 일을 처리(?)하곤 하던 엉성한 모임입니다.
해서 대표라거나 회장이라거나 하는 자리가 없습니다.
다만 제가 주로 연락을 취해 왔던 까닭에, 또 다른 구성원보다 제안을 많이 했던 까닭에 마치 제가 대표쯤 되는 줄로 아는 이가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글이 저희 <김종태의집>이 내는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은, 따라서 분명합니다.
어제 밤 상준님의 글을 읽고 혼자 생각하던 끝에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이제 변명 삼아, 일이 처음에 왜 이리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종태의 꿈"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친구 이양병님(제 친구입니다만)에게 들었을 때, 저는 참으로 고맙기도 하고 한편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아이디어를 내 주었다는 면에서 고마웠고 <김종태의집> 바깥에 있던 분이 먼저 그리 생각했다는 면에서 부끄러웠습니다.
더구나 촬영기를 사 주는 것말고는 아주 기본적인 비용만을 요구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거의 감동이었습니다.(나중 알기로는 촬영기를 사서 빌려 주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양병님으로부터 말이지요. 그러니 더욱 감동스러울 수밖에요.)
그리고 상준님은 일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저 또한 칠팔년 가까이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김종태의집>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었고, 부족한 능력이나마 발휘하여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여러 안(案)을 내 보기도 하고 일정을 짜 보기도 했습니다.
저로서는, 그리고 저희 <김종태의집> 모든 구성원으로서는 처음 해 보는 일이었던 만큼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면서도 한 달에 두세 차례 만나면서 열심히 머리를 짜내려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희들은 스스로가 비전문가라는 점을 인정하여, 비교적(?) 전문가인 상준님이 모든 것을 해주기를 바랐습니다.
전체 계획, 시나리오, 일정 잡기, 섭외 등을 말입니다.
상준님에게 이러한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찌 되었든 저희들은 상준님에게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은 생각만큼 잘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비전문가인 저희들로서는 전체 계획, 일정 등을 확실히 알고 싶었으나 그 모든 것들이 안개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저희들은 상준님이 만족할 만한 전문가가 아니라는 데에서 찾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희 <김종태의집> 모든 구성원들이 아니라 저 개인만 이러한 느낌을 갖거나 상준님의 상대적(?) 비전문성에서 그 이유를 찾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저는 모임에서 대안을 찾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과해야 마땅할 제 개인의 결정적 잘못이 드러납니다.
상준님에게 상황을 솔직히 말하고 같이 대안을 찾았어야 했는데 그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준님에게 일 진척을 몇 차례 촉구하기도 했던 기억도 납니다만, 그때마다 하는 상준님의 답변을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지나치게" 비전문가여서 상준님의 일 진행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커다란 잘못이었겠지요.
아무러하든 제 제안은 모임에서 받아들여졌고, 열사 김종태의 근거지인 성남의 여러 아는 분들을 통하여 대안을 찾던 중 마침 성남에 와서 "시민 비디오 강좌"(정확한 강좌 이름은 기억 못하지만)를 열던 김동원님과 끈이 닿게 되었습니다.
물론 김동원님이 저와 고교 동창이라는 점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저희는 그보다는 그저 상준님보다 좀더(?) 전문적인 푸른영상에 일을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그만큼 저희는 "김종태의 꿈"을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고, 그 마음은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정말 순수한 것이었습니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들더라도 제대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 저희들 마음 속에서 동심원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일의 잘못은 여기에서부터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상준님에게 양해를 구한다거나, 상준님이 이 일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게 한다거나 하는 노력을 저희가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준님에게 양해를 구하는 일이 부족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사실 양해를 구하는 일은 이양병님이 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상준님이 이 일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을 때, 저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상준님을 독려하지 못한 잘못도 있습니다.
그뒤 일은 푸른영상의 김성환님이 맡게 되었습니다.
성환님은 "너무너무"라는 반복어법을 써도 될 만큼 열정적으로 일을 해 주었습니다.
저희 <김종태의집> 구성원들의 지원과 보조는 무척 무성의했습니다.
인터뷰할 사람을 제대로 섭외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허나 열사 김종태의 흔적을 찾는 성환님의 발길은 뜨거웠습니다.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던 군 부대 자료도 찾아냈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같던 20년 전의 목격자도 찾아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위한 전체 계획과 일정을 세워 준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성환님은 아예 <김종태의집> 구성원이라고 스스로 말하기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의 또 다른 발단이 보여집니다.
성환님의 열정적 태도와 능력(?) 때문인지 상준님에 관한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덧붙이자면, 상준님과 연락하려고 몇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연락이 잘 되지 않았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다른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아직까지도 푸른영상에 비용을 지불하지 못해서 푸른영상에 죄송스럽고, 그러면서도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으려 애쓰는 대표 김동원님이 고맙고, 자비를 써 가면서도 그토록 일을 잘 해 주신 김성환님이 밉습니다.
2002년 6월 15일 창문이 시퍼렇게 밝아오는 즈음에
한국 축구의 월드컵 16강 진출의 기쁨을 잠시 접으면서……
최광열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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