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번 구리수마수때에 안치환 "굳바이 1999"콘서트에 가려 합니다.
많으신 분들이 안치환의 음악 세계에 대해서 비판을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처음에는 저 자신도 그가 상업주의와 결탁해서, 돈맛을 들여서 거기서 헤어나오질 못한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또, 실제로 그의 1, 2집 같은 경우는 앵무새에 불과했던게 사실이지만, 3집부터는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더군요. 제목소리를 내기 위한 몸부림과 그 흔적들. 3집에는 반반이었는데, 4집부터는 완전히 그의 목소리를 찾은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에므비씨에서 포크음악 30년이라는 프로에서 나레이터, 김창환, 가 말하기를 "그때당시의 가수들은 투쟁의 의지가 없었다. 시대가 투사를 만들었다", "군사정권은 투사 제조기"였다고, 말을 했지만, 이건 너무 우리의 자주성을 말살한 발언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안치환의 1, 2집이 그랬어요. 마치, "나는 조용하고 싶은데 남들이 그렇게 하라고 강제로 시킨 것처럼..."
하지만, 4집부터는 완전히 껍질을 벗은 성충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 적에도 학생들에게 왜 그레야만 하는지 설명을 해준적이 없었던거 같아요. 단지, 우리 동료가, 우리 이웃이, 우리 친구가, 억울하게 당한다는 이유 하나로 투쟁이니, 쟁취니, 이런 험악한 말을 들먹이니, 먹힐리가 없었겠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고, 또 달라졌습니다. 전대협때 비해서 한총련이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대중의 공감의 부재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안치환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서서히, 대중에게 녹아 들어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직접 콘서트도 기획하고 참여하기도 하고, 또 다른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가서도 제일 중요하게 보는것중의 하나가 "무대장악력"이랍니다. 제 소견으로는 무대장악력이 없는 가수는 가수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무대장악력의 원천은 관객의 공감을 통해서 나오니까요.
오쨌든 말이 너무 많아지면서 방향을 잃고 있는데요, 결론은 그겁니다.
대중과 함께 하는 음악, 그래서 대중을 사로잡는 음악, 그게 안치환의 음악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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