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일간의 편집이 끝났다.
편집이라고 말하기가 힘든,
구성안에 따라 OK컷을 느슨하게 붙이는 식의
OK컷 모음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나는 편집실에서 계속 붙어있었으므로
편집이 끝났다고 말하고 싶다.
토요일 5시. 메인언니가 와서 나와 우리PD가 붙인 그림을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5시 30분 정도부터 10시까지
나는 깨질대로 깨져가며 그 시간을 버텼다.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엔 " 넌 편집도 안해봤냐?" 그래서
"그림을 모은 것 뿐이다"는 내 말에
"그럼 그동안 뭐했냐?"며 짜증을 냈다.
뭘 했냐고? 그림을 모았다.
100개의 촬영본 속에서
잘 찍힌 그림과, 쓸 말을 고르고
같은 질문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말을
한 모둠에 붙이고
가능한한 연출이 편집을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한번도 제대로 그림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되는 메인 작가를 위해
자료를 본 후에 작성한 가구성안과
촬영본을 본 후에 작성한 본구성안이 다를 바 없는
현재의 상황이 변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림을 모았다.
메인작가와 연출이,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여지를
카메라의 눈으로 전개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나에게 편집의 기본을 말하는 작가의 태도나
생각을 같이 모으며 그림을 붙였던, 우리 연출의 침묵이
나를 슬프게 했다. 아니 슬프다기 보다는 나는... 원망스러웠다.
비가 올 듯이 젖은 공기 속에서,
MBC 앞 아파트 뒷편의 텅빈 공터에서
나는 후배 정남이에게 전화를 걸며 하소연을 했다.
나를 위로해주기에 그는 너무 멀리 있었고
전화기 상태는 너무 나빴다.
푸른영상의 전화는 대답이 없었고
나는 텅빈 거리에서
텅빈 집처럼 멍하게 서있었다.
눈물이 얼룩진 얼굴로 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엄마는 분명히 걱정을 할 것이고, 그리고 묻겠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엄마는 쓸쓸해하실 것이고,
그리고 대답을 하면... 엄마는 화를 내실 것이다.
내 딸이 그런 일을 당하다니... 나보다 더 억울해하시며.
버스는 오지 않았고... 아니 버스를 보지 못했는지도 모르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푸른영상 열쇠를 잃어버린지는 오래 전 일이니까.
옛날엔 갈 곳이 없으면 푸른영상 옆방, 내가 침실이라고 부르는 그 곳에서
나는 잠을 잤다. 땀을 흘리면서.
다시 한 번 전화를 하니... 강길이형이 받았다.
그리고 그 때부터 어제까지
꼬박 2박3일을 나는 푸른영상에서 보냈다.
애써 밝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일이 많아서 못 들어간다는 전화를 드리고
나는 푸른영상에 있었다.
내 몸엔... 물기가 너무 많다.
끊임없이 주저리고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강길이형이 사주는 맥주를 마시고
상엽이가 싸온 도시락을 먹고
그리고...택진이가 만들어주는 호박고추범벅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행복하다.
내가 선 자리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푸른영상이 같이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렇게 원했던
영상을 통해 세상을 말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강물같은 잔잔함을 항상 꿈꾸는 나이지만
나는 스스로가 얕은 시내임을 잘 안다.
살아가는 일이 절대 평탄하지 않다는 것도,
그리고 내가 변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렇지만 넘어질 일은 없겠지.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그렇게 문제가 없을 나.
그것이 내가 선 자리이다.
나는 이 곳 MBC에서
씩씩하게 <조봉암>과 <코리아게이트>를 만들 것이다.
그것이 가장 일차적인 목표이다.
내가 이 곳에 머무는 이유.
그것을 수정하지 않겠다.
내가 설 자리는 내가 선택한다.
그 곳이 불합리하고 관료적이라 하더라도
거칠다 하더라도
나는 스스로를 낮춰가며,
그래 때로 모멸감을 느껴서 끝없이 눈물을 흘릴지라도
나는 프로그램을 완성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선 자리이다.
주저림을 들어준 감독님과, 강길형과, 상엽이와, 경화와, 택진이와
그 모든 시간에 함께 해준
주홍색 낡은 쇼파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안녕.
내 자리야, 그리고 내 사람들아.
안녕. 씩씩하게 잘 지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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