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목) 장애해방운동가 최옥란 열사 민중복지장
3월 26일(수), 새벽 4시경, 이 땅 장애민중이 받는 억압과 착취에 맞서, 그리고 생산적 복지의 허구성과 기초 생활 보장이 되지 않는 현실에 맞서 싸우다 끝내 자살을 택한 최옥란(뇌성마비 1급 장애여성) 동지가 산화하였습니다.
그녀의 치열했던 삶에 조의를 표하는 많은 동지들이 영안실(한강 성심병원)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영정을 지키고 같이 밤을 샌 후 28일(목) 오전 6시부터 시작되는 발인부터 장례식 일정까지를 함께 사수해냈으면 합니다.
■ 장례일 : 2002년 3월 28일(목)
■ 발인 : 한강 성심병원(6:00~6:30)
■ 노제 : 명동성당 들머리(7:00~8:00)
■ 장애해방운동가 최옥란 열사 민중복지장 : 세종문화회관 앞(8:30~10:00)
■ 장지 : 화장(벽제) (11:00~ )
발인 후, 최옥란 열사가 작년 12월 그 추운 겨울날, 단식농성을 했던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며, 투쟁으로 이 땅 장애민중의 처참한 삶의 현실을 폭로하고 장애해방을 쟁취하고자 했던 열사의 정신을 이어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한 노제를 진행합니다.
노제를 마친 후에는, 지난 2001년 1월, 오이도역 장애인용수직리프트 추락참사를 규탄하며 지하철 선로점거 시위를 이끌며 삶을 건 투쟁으로 '장애이동권 투쟁'의 역사를 열어갔던 고인의 뜻대로, 장애인도 탈 수 있는 저상버스 도입 투쟁을 벌여온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장애해방운동가 최옥란 열사 민중복지장'을 갖습니다.
최옥란 열사의 죽음은 자살이라 할 수 없습니다. 타살입니다.
청계천 도깨비 시장에서 노점을 하며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던 최옥란 동지, 그녀가 요구한 것은 누구나 누려야 할 '노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이동할 권리, 그리고 생존할 권리'였습니다. 그러나 장애민중을 착취하고 차별하는 이 땅의 현실은 그녀에게서 최소한의 생계 수단이었던 노점상을 빼앗고 살아갈 권리를 박탈했습니다. 그녀를 자살로 몰고 간 살인자는 분명 현 사회입니다.
"...저는 저의 텐트농성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 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벌써 두 명의 수급권자가 자살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더 이상 수급자들이 자살하거나 저 같이 자살을 생각하지 않도록 바뀌었으면 합니다..."
(최옥란 씨가 명동성당 농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쓴 결의문 중)
단식농성을 시작하며 최옥란 동지가 작성했던 눈물겨운 결의문에는 그녀가 이미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 사회는 그녀가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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