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푸른 영상을 안 것은 관악구 봉천3동 철거하기 전
푸른 영상에 계신 김동원님께서 가져 오신
행당동 사람들이라는 영상물을 보고난 후 였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이라면 제 억울한 사연을 알아 주시리라 믿고
이곳에 글을 올립니다.
겨우 달동네 생활을 벗어나 살만한데 나온 일이라 충격이 큽니다.
좀 길더라도 읽어 주시고 제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는
얘기를 좀 들려 주십시오.
푸른 영상의 발전을 빕니다.
한동안 뜸하던 불면증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해고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쓰던 빗자루하나. 낡은 대걸레.
사무실로 들어가지 못 해서 안됐기에 내가 정성껏 물주고 가꾸던 가녀리고
못생긴 식물들만 바라봐도 눈물이 난다.
너무 많이 닦은 눈물때문에 눈주위 살갗이 벗겨져 발갛고 퉁퉁부운 얼굴로 집으로 갔다.
" 엄마 회사에서 짤렸어...."
컴 게임에 열중해 있는 작은 아이(초등학생)를 마주 볼 자신이 없어 외투를
벗으며 흘러 가는 소리인양 얘기했더니 아이가 놀라서 왜냐고 묻는다.
"수강생이 줄어서......"
"수강생이 준 것과 엄마와 무슨 상관인데?"
하고 묻는다.
무슨 상관? 상관......
나도 사실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아이에게 설명을 해 줄수 없어 그냥 이불을
쓰고 누웠더니,
"엄마 변기 쓰고 물 내리지마!"
하고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왜냐고 물으니 이제부턴 소변 두 번 보거든 물을 내리자고 한다.
초등학교 겨우 5학년 철부지가 엄마의 해고 통보에 너무나 현실적이 되어 버린것이다.
가슴이 탁 막혀왔다.
혼수장롱 살 돈으로 월세 보증금을 내고 산동네 꼭대기서 시작한 살림살이.
고지대라 물사정이 좋지 않아 새벽에 나오는 물을 남의 집에서 받아
물지게로 날라다 빨래하고 생활하면서 갓 태어난 큰애를 키워왔고,
십수년 될 동안 생활비도 제대로 가져다 주지않고 사고만 치고다니는 남편대신
식당일부터 시작해서 노동일등 돈되는 일은 다해 왔었다.
토요일이라 유치원엘 가지 않는 늦잠꾸러기 작은 아이를 두고
예식당 주방일을 하러 다닐때였다.
낮 12시경이면 큰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밥 챙겨먹이고, 같이 놀아 주라는
계산으로 불안한 마음에도 늘 그렇게 예식장일을 보러 나갔는데
웬일인지 그날은 작은 아이가 일찍깨였는지 없는 엄마를 부르다가
울면서 산꼭대기 동네를 내려가 제 형이 다니는 학교엘 찾아갔던 모양이었다.
눈꼽은 눈꼽대로 끼고 얼굴은 꼬질꼬질하게 해 가지고
운동장 한가운데서 힘대로 우는 작은 아이때문에
공부하던 큰아이는 너무나 민망했었고 동생때문에 이젠 챙피해서 학교도
다닐수 없다며 왜 엄마는 어린 동생을 혼자 놔두고 돈벌러 다녀야 하는지
속이 상할데로 상한 큰아이의 볼멘소리를 듣기도 하며 살았다.
이런 생활 끝에 4년전부터 강남쪽에 있는 여성회관에 청소부로 나갔었다.
회관 개관때인 처음 10여일은 무임으로 시작하였고
50여 만원 받는 수습 3개월을 거쳐 지금에 왔다.
평소 기관지가 좋지 않은 탓에 일은 고되고 힘이 들었었지만
내가 아니면 험한 일을 대신 할 사람도 없고
휴가를 하지 않음에 따라 오는 특별수당을 받을수 있었으므로
월차 휴가도 반납하고 열심히 일을 하였다.
작은 돈이지만 매달 꾸준히 들어오는 월급이 있어
두아이 모자라나마 밝게 키울수 있었다.
그리고 결혼 십수년만인 작년에 대출을 내어서 12평짜리 우리집도 샀었는데.......
여성회관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청소원이었던 나와 취사원인 식당아줌마
이렇게 두명에게만 해고 통보가 있었을 때
(정규직이던 우리보다 지출을 적게해도 되는 일용직으로 채용하겠다고 했다)
가장 험한일을 하는 우리만 이런일을 당하는지....... 하는
억울함과 분노로 인해 옥상에서 뛰어 내리고 싶었다.
경영이 어렵다면 시간강사대신 들어온 정규강사도 입사시키지 않았어야 했고,
장안의 유명강사를 고액을 주고 데려다가 부자들을 상대로 무료 강의도 하지 않았어야 하지 않는가.
생활수준 높은 부자들에게 온갖 봉사 다하면서 가장 험한일을
하고 힘없는 우리에게 해고 통보를 하다니......
무료강의 한번만 덜해도 청소부인 나와 취사원 아줌마 월급을 주고도 남는다.
열심히 닦고 문지른 덕분에 옆 건물 사설학원 사람들까지 깨끗한
우리 여성회관 화장실을 이용해왔고, 그렇게
내 정성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내가 맡은 일 했다고 자부했는데,
소위 말하는 여성가장으로 힘겹게 살아오다 이런 일을 당하니 스트레스로 인해
좋지 않던 위는 경련을 일으켰고 며칠간 잠이 오지 않은 밤이 계속 되었다.
그런데 이런 우리를 위해 몇 안되는 직원들이 너무나 눈물겹고 감사한 제안을 해왔다.
해직되는 우리 두명 외, 남은 6명의 직원들이 월급여를 갹출하여
일용직이(월급 70만원) 될 우리들에게 보태어주겠으니 계속하여 같이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첫아이 임신한 한 명의 여자 사회복지사,
결혼한지 1년도 채 안된 또 한명의 사회 복지사,
대학원 졸업하고 갓 입사한 한 명의 상담사, 컴퓨터 교사, 안전관리원,
그리고 야간대학에 다니는 서무에 이르기까지
자신들도 박봉에 옥탑단칸방에 사는 사람,
아내가 분식집에서 부업으로 일하는 넉넉치도 않은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희생할 것을 결정을 한 것에 대해 뭐라 감사의 표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회관에서 가장 오래 근무자인 나보다 늦게 입사하여
나와 안지 가 3년여에서 1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기에...
아직도 내 거취를 정하지 못했지만
이 메마르고 살기 빡빡한 사회에 이렇게
따뜻한 분들이 있으니 비관적이던 내 생각에 활기가 돋아 났고
짧지도 길지도 않은 44년을 결코 헛되이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욕도 생기는데 아이들을 볼때마다 답답하고 가슴이 미어진다.
비록 남에게 떳떳하게 말을 못하는 청소부였지만 아이들에게만은 부끄러지 않게
지내왔는데 이제 3월이면 청소부일자리도 잃는다.
여성가장으로서 생각지도 못했던 해고 통보를 받고보니 막막하기만 하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내 모습이 닳고 낡은 빗자루 같이 버리면 당장 버려질
신세같아 눈물이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