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제목 |
 |
"가리봉동, 그 병방의 사람들" - 시청률 잡기에 나선다 |
| 번호 |
 |
1900 |
분류 |
 |
일반
|
조회/추천 |
 |
743 / 267 |
| 글쓴이 |
 |
이성규 |
|
 |
|
| 작성일 |
 |
2002년 01월 04일 01시 27분 04초 |
 |
"저녁 때 아파트 놀이터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 주정을 부린다. 행패를 부리다가 소줏병을 깬다. 시끄러운 소리에 아파트 주민들은 베란다에 나와 사고현장을 본다. 경찰에 신고를 한다. 이 경우 시청률은 매우 높다. 하지만 사건이 진화되고 한 아이의 어머니가 놀이터에 나와 깨진 소줏병조각을 줍는다. 다음날 자기 아이와 친구들이 놀다가 행여 다칠까봐 걱정이 돼서다. 이 경우 시청률은 ‘제로’에 가깝다. 어떤 것이 의미있고 감동적인 장면인지는 모두가 안다."
오래 전 한 방송 PD가 자신의 책을 통해 밝힌 이야기다. PD들이 시청률 때문에 못 해먹겠다고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더욱이 요즘엔 매일매일 ‘성적표’가 나오면서 PD들을 웃게도 하고 울게도 만든다.
방송 다큐멘터리에 복귀하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놈의 시청률이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지난해 부터 지금까지 내가 제작한 방송 다큐멘터리는 그나마 시청률이 높아서 방송이란 것을 통해 먹고 사는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형편이다. 인도 관련 사이트에서 비난을 받은 바 있는 "스물 한살 우리는 인도로 갔다"의 경우 반응은 제 각각이었지만 시청률은 10% 가까이 나와서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가리봉동, 그 변방의 사람들>
방송일시 : 2002년 1월 23일 (수) 밤 12시
방영매체 : KBS 1TV 수요기획
기 획 : 이성규
연 출 : 강경민
제 작 : Report25
촬영기간 : 2001년 11월 1일 ~ 2002년 1월 6일
기획의도 :
한국 자본주의는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고수하면서 지금의 경제적 부를 이룩해냈다.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서울 구로공단은 70년대 경제성장의 상징적인 위치로 자리잡음으로써 한국 경제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안고 있다. 그 공단의 역군들이 삶과 문화의 터를 이뤄왔던 가리봉동은 한국 자본주의 발달에 있어서 그 중심이면서 마이너리티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지금도 살고 있는 곳이다. 가리봉동에는 현재 3만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일부 가출 청소년들이 집중거주하고 있다. 우리에겐 공돌이 공순이라고 불리우던 산업역군들이 70년대 이곳에 집중 거주하면서 가리봉동의 마이너리티 문화는 시작됐다. 이곳에 이들이 집중 거주하게 된 것은 이른바 ‘쪽방’이라는 저렴한 임대료의 방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제조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게 되는 90년대부터 가리봉동은 급격한 변화양상을 띠었던 현대의문화적 가치와 기존의 가치관의 충돌로 인한 가출 청소년의 집단거주지로 변모한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사양산업인 제조업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가리봉동의 쪽방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가출 청소년들이 혼합되는 거주문화를 형성한다. 가리봉동은 한국 자본주의 성장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안고 있는 우리사회의 거울과 같은 곳이다. 우리는 그곳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21세기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다시 그려보고자 한다.
리포트25가 제작한 "가리봉동, 그 변방의 사람들"이 2002년 1월 23일 KBS 수요기획을 통해 방영된다. 이제 본격적인 편집에 들어가는데, 나로선 시청률을 의식하여 상당 부분은 방송어법에 충실하게 만들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앞의 상황에선 시청률이 높다. 그러나 뒷 상황으로 전개되면 시청률은 제로다. 가리봉동에서 우리는 두달간 쪽방에 살며 60분 카세트 30개를 소비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30시간이다. 이 중에는 한국에서 절규하는 중국 여성의 눈물도 있고 나 홀로 임신한 채 병원에서 눈물로 출산을 하는 중국계 여성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자신들 스스로 팀을 만들어 공사 현장에서 도급을 맞는 조선족(중국교포)들의 이야기도 있다.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사라진 조선족, 쪽방에서 삶을 마감하는 노인, 70년대와 80년대 노동현장에 서서 투쟁을 했던 이른바 공순이의 이야기도 있다.
가리봉동 사람들은 21세기 한국 자본주의 진행과정의 자화상을 담은 기록영화이다. 그것은 화려함 속에 감춰진 우리사회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사랑이며 쓸쓸함이다. 이제 가리봉동에는 자본주의의 화려함에 밀린 흔적들만 남아있다. 중국계 노동자들에 의해 세워진 아파트, 그리고 지식산업으로 벤춰단지들이 하나 둘씩 들어서고 있다. 한때 가출 청소년의 집산지였던 가리봉동은 이젠 옛날 이야기가 됐다.
편집과정에서 강경민 감독과 무지하게 싸우게 될 것 같다. 그가 원하는 컷을 제작자인 나로서 수용하긴 어려운게 있을테니까... 지난 회의에서 난 강경민 감독에게 이렇게 제의를 했다. "방송은 다음 작업을 위한 수익사업으로 여기자.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긴 따로 하자. 이번 작품을 끝내면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편집을 하자. 그런 다음 독립영화제를 통해 관객들과 만나자." 혹자는 방송계의 이런 현실에 분개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난 전혀 분개하지 않는다. 방송이란 자본주의의 시장구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난 그 구조를 인정하여 받아 들인다. 그래서 다시 작업하는 어찌보면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길 따로 제작하는 것으로 난 타협점을 찾았다.
리포트25는 자본과 권력으로 부터 자유로운 다큐멘터리를 지향한다. 그러나 현실은 "돈"이란 문제를 낳는다. 문득 빨간 눈사람의 이경순 감독이 떠오른다. 그녀는 애국자 게임을 제작하기 위해 조선일보의 신문배달을 하며 지냈다. 그녀가 조선일보를 돌리는 모습이 <애국자게임>에 나온 것은 묘한 아이러니였다. 그러나 그것은 독립꾼으로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한국 젊은 영화인들의 엄연한 현실이다. 목소릴 높이는 것은 쉽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감수하며 살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난 이경순 감독을 사랑하다 못해 존경한다. 그녀는 얼마전 네팔에 다녀와서 모방송의 아침방송을 제작했다. 그것은 순전히 제작비와 먹고 사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몸짓이다.
"보이지 않는 전쟁"도 조만간에 방송을 통해서 다시 소개될 예정이다. 50분물 2부작으로 다시 제작될 예정인데, 방송국 데스크와 지금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그들로선 위험부담이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인도 정부와의 마찰 그리고 과연 우리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가 시청자들에게 먹힐까가 방송국 데스크의 생각이다. 이 점에 난 동의한다. 이미 독립영화쪽에서도 동떨어진 이야기였기에 다소 차가운 반응을 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방송에서 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그들의 우려를 잠재우는 묘안을 찾았고 다시 인도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전쟁" 새로운 버전을 위한 촬영을 할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타협이다. 순수성을 잃었다고 할 수도 있다. 자신만만한 태도인지 모르지만, 나로선 시청률이란 성적표 받기에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다. 이미 숱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터득한 노하우다. 내가 만든 방송물 가운데에는 교양물 사상 최대 시청률이라 할 38%라는 비공식 기록을 세운 바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난 무척이나 건방지다.
"가리봉동, 그 변방의 사람들" - 이제 시청률 잡기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원칙은 있다. 시청률 잡기에 나서다 보면 일종의 왜곡현상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왜곡은 내가 가장 경계하는 부분이다. 물론 판단은 시청자가 할 것이지만....
강경민 감독과 싸우며 편집을 할 것을 생각하면 사실 깜깜하다. 그 깜깜함은 사실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난 그 깜깜함을 즐기며 여전히 작업을 할것이다.
2002년 1월 4일 새벽 안산에서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