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피정을 간 사이에 딸이 아팠다.
하은이 태어나서 처음 아픈 것이다.
화요일날, 큰언니가 엄마 선물로 옥장판을 사왔다.
남편이 피정을 갔기 때문에 난 엄마랑 같이 잤고
하은이는 항상 날 따라다니기 때문에 셋이서 함께 잤다.
문제는 그 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뜨끈뜨끈 지지는 게 너무 좋아서 엄마랑 나는 옥장판 위에서 자고
하은이는 바닥에다 이불을 깔고 재웠는데
우리가 더워 이불을 안 덮는 것처럼
하은이도 더울 거라고 생각, 이불을 안 덮어준 것이다.
수요일부터 하은이는 맑은 콧물을 질질 흘리고
또 눈물까지 흘렸다.
허영미 선생님 말로는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코가 막혔기 때문이고 감기 시초라고 했다.
병원에 빨리 데려가라는 허영미 선생님과 엄마의 성화를 견디며
<황금빛 똥을 싸는 아기>라는,
자연요법에 대한 책을 보고 또 보았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생각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갑자기 찾아왔다.
병원엘 데려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하은이는 열이 오르고 자꾸 울었다.
엄마는 왜 엄마 방으로 왔냐부터 시작해서
청소를 안해서 그렇다, 내가 잘 안 씻어서 그렇다 그러면서
무지막지하게 욕을 하셨다.
하은이는 계속 울고....
나는 하은이를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마음 속은 복잡했지만 겁이 더 났다.
자연요법에 의하면 아토피나 감기나 모든 것은
불순물을 없애기 위한 몸의 자정작용이다.
따라서 젖을 먹이는 대신 죽염과 생수를 먹이고
관장, 풍욕, 냉온욕 등으로 노폐물을 없애줘야한다.
자연요법의 기본은 몸의 자정작용을 믿는 것이다.
나는 내 딸은 안 아플 줄 알았다.
책을 봐도, TV를 봐도 젖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은
안 아프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나는 내 딸이 자신의 병을 이겨내도록
도와주며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난 자신이 없었다.
그냥 중간만 가자...남들 하는 대로 하며 사는 게 좋은 거지,
그렇게 생각하려 애쓰며 병원엘 데려갔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는 동안에도
하은이는 눈물을 뚝뚝 흘려
간호사들과 아줌마들까지도 불쌍해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의사는 약을 쓰지 말자고 그랬다.
집에 가서 목욕이나 잘 시키라는 것이다.
그 밤에도 하은이는 잘 자지 못했다.
또 그 다음날 밤에도.
밤마다 열 때문에 뒤척이는 딸 옆에서
나는 차가운 물수건을 머리에 얹어주며
내일은 병원엘 가야지, 가야지 했다.
그렇게 이틀밤을 보낸 지금
하은이는 이제 괜찮은 것같다.
나는 내 딸이 대견스럽다.
그런데 앞으로 또 같은 일이 벌어지면
난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그저 드는 생각 하나.
우리 엄마한테 많이 고맙다는 것.
난 아들을 많이 기다리던 집의 막내딸이다.
내가 뱃속에 있을 때 동네사람들은
태몽도, 입덧도, 그리고 배 모양도 다 아들이라며
이제 저집 엄마 고생 끝났다고 축하해줬다 한다.
내가 태어나던 날,
외할머니는 기분좋게 오셔서 막 태어난 아기를 씻기다가
딸인 걸 발견하고는 하늘을 욕하며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 버리셨다고 한다.
난 그런 딸이다.
내 기억엔 아버지가 날 예뻐하셨던 기억밖에 없는데
얼마 전에 언니가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내 동생은 온 동네가 기다리던 아들이었고
그것으로 우리 엄마는 출산을 더이상 안하게 되셨는데
아버지는 내가 내 남동생이 들어설 길을 닦아놓은
터닦이라고 예뻐하셨다는 것이다.
엄마에 대해 말하라면
난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살고 있는 내 생일상은 한 번도 안 차려주면서
서울에서 학교다니는 오빠 생일이 되면
방바닥에 깨끗한 짚을 깔고 그 위에 상을 차리던 엄마를 기억한다.
또 동생하고 싸울 때 내가 혼이 더 많이 났던 것같다.
하지만 이젠 조금씩 알 것같다.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시간까지
엄마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을까.
딸이 엄마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경험을 공유하기 때문인 것같다.
엄마한테 잘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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