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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별연습
번호 1756 분류   일반 조회/추천 617  /  225
글쓴이 류미례    
작성일 2001년 11월 19일 23시 50분 43초
황진이가 새끼를 낳은 지 1달이 넘었다.
이제 강아지들은 아장아장 걸어다니고
"깡깡" 짖으면서 개같은(개다운?) 행동을 하고 다닌다.
다녔다는 말이 옳겠다.

토요일날 보니 6마리에서 4마리로 줄어있더니
오늘은 2마리만 아장거리며 마당을 돌아다녔다.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주려고 했는데
헤어짐은 너무나 갑자기 찾아왔다.

나는 하은이를 낳은 지 140일이 다 되어가고
자나 깨나 하은이를 끼고서 살아가는데
황진이는 그렇게 하나씩 새끼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게 안됐다.

사람은 60년을 살고 개는 길어야 15년을 산다니
앞으로 펼쳐질 하은이와 나와의 인연을
더 빨리 더 축약해서 겪고 있는 것이겠지만
황진이 보는 마음이 영 안쓰럽다.

난 그렇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헤어짐'이라는 걸 감당하지 못해왔다.
목포나 서울에서 학교 다니느라 떨어져 살던 언니, 오빠들이
명절 때 집에 왔다 도시로 돌아가고 나면
며칠을 텅빈 마당을 보며 울먹이곤 했었다.

20대가 힘들었던 것도
그 놈의 헤어짐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질질 끌려다니던 관계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 난 내 딸을 떠나보낼 시기가 아님에도
황진이와 새끼들의 '작별'이 마음 아프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오히려 잘된 일일 수도 있다.
황진이의 새끼들은 센터 선생님들의 심사숙고 끝에
뛰어다닐 수 있는 마당이 있고,
묶이지 않아도 되는 시골에 있는,
잡아먹지 않고 키우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는 집으로 갔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이라서 안부를 물을 수도 있다.

잘 준비된 헤어짐은 어줍잖은 동거보다 훨씬 낫다.

이건 딴 얘긴데
내가 나름대로 살림의 지혜라고 생각했던 게 있다.
그건 잡동사니 서랍인데
우리 남편은 밖에서 들어오면 주머니의 것을 다 꺼내어
TV나 책상 위에 얹어놓는다.
그런 식으로 물건들은 제 자리를 잊은 채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데
처음 얼마동안은 잔소리도 하고 내가 치우기도 했지만
그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컸다.

그러다가 내가 생각한 건
잡동사니 서랍을 만드는 거였다.
서랍 하나를 통째로 비워놓고서
손님이 오셔서 급하게 청소를 할 때
모든 물건들을 다 쓸어넣는 것이다.
그러면 겉보기에 깨끗해서 좋고
찾을 물건이 있으면 잡동사니 서랍을 뒤지면 되니까
참 좋은 생각이라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문제는 잡동사니 서랍이 하나에서 둘로,
나중에는 세개까지 늘어나버렸다는 거다.
산후조리를 위해 집에 오셨던 엄마는
옷을 넣을 서랍이 없어서 여기 저기를 보시더니
잡동사니 서랍을 치우라고 하셨다.
물건을 절대 못 버리는 내가 치울 게 없다고 하자
엄마는 하나하나 물건들의 용도를 물어보시더니
3개의 서랍을 순식간에 하나로 줄이셨다.
옷장은 그렇게 자신의 용도로 돌아왔다.

내가 많이 노력해야 하는 것,
그건 잘 버리는 것,
그리고 잘 헤어지는 것.
하은이가 태어날 때부터 같이 살던 엄마가
이제 고향으로 내려가신다.
거기서부터 연습해야겠다.
잘 헤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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