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허중
은하가 어제 또 집을 나갔다.미사 내내 허중은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다.
허중의 얼굴은 어두웠고, '집 나간 은하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유부제의 기도가 끝난 다음 허중의 눈엔 약간의 물기가 어려 있었다.
2. 현진
같이 사는 할머니(내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우리 교회 주임신부님의
장모님)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뇌졸중이라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중하진 않지만 왼쪽 손이 자유롭지 못하시다. 물리 치료 중인데 언제
퇴원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3. 나
신용카드와 은행카드, 그리고 약간의 돈이 들어있는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항상 들고다니던 작은 가방에 넣어뒀는데 가방째 잃어버린 것이다.
정신없는 나는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에 헌금을 하려고
가방을 찾는데 온 집안을 다 뒤져도 안나오는 것이다.
문제는 신용카드였다. 만약 거리에서 잃어버렸다면, 그리고 누군가 카드를
썼다면 우리집의 경제사정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손실이 있을 것이다.
미사 직전까지 가방을 찾다가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미사에 임했다.
4. 유부제
하은이의 백일이었던 10월 12일, 우리는 하은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전날부터 복통과 설사를 하던 유부제와 함께
난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 처음엔 장염이라고 했으나 너무나 복통이
심해 내시경을 해보기로 했다. 무통내시경이라서 유부제는 마취상태였고
보호자인 나는 끔찍한 화면을 보았다. 상처투성이인 위장을 보다가 난 비명을 질렀다. 의사는 도대체 이 상태가 될 때까지 어떻게 참고 있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유부제의 고통의 원인은 장염이 아니라
병명도 긴 위장질환이었다. "천공직전이예요!"의사는 단호하게 외치며
나보고 나가있으라고 했다.
그 날 이후 유부제는 물만 마시고 있다. 나흘째의 단식이라 힘이 드는지
미사 집전 내내 그의 입술은 말라있었다.
5.황진이
그동안 배가 불러있던 센터의 귀염둥이 황진이가 새끼를 낳았다.
무려 여섯마리. 새끼를 낳아서 예민해진 황진이는 누가 오면 짖기부터 했다. 황진이는 미사를 드리는 예배실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자신의 새끼들을 우리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신에게 새 생명을 위해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지갑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은하 걱정을 하는 허중,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상이 안되는 현진, 이렇게 세 명의 신도를 앞에 두고 유부제는 열심히
설교를 했다. 센터의 미사는 항상 이렇게 조촐하다. 교회공동체를 꿈꾸는
장애인센터가 자체 미사를 드린 지 2개월째. 첫 미사날, 11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아무도 오지 않아 나는 제대 앞에 앉은 유부제를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봤었다. 다행히 센터 선생님들이 왔었고....
허중, 현진, 나는 매주 미사에 참석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오면 더 좋을 수고 있겠지만 넷이서 드리는 미사도 평화롭다. 우린 미사가 끝나면 보라매공원에 놀러가기도 하고 노래방에 가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참 힘들었다.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유부제는 미사 도중 몇 번이나 모든 근심을 하느님 앞에 내놓으라고 얘기해주었다. 어쨌든 미사를 드리고 나니 조금 마음은 편해진 것같았다.
미사 후 먹을 국수를 삶고 있는 내 옆에서 허중은 "은하 집에 없겠지요?"하고 자꾸 물었다. 어제 둘은 만나기로 했었는데 허중은 새로 개업한 엄마의
식당일을 도와야 했기 때문에 만나지 못했다. 허중은 자꾸 은하얘기를
하다가 "어제 만났으면 안나갔을텐데..."하며 말을 흐렸다.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허중은 집에 간다며 센터를 나섰다.
현진은 자기 방으로 돌아갔으며 나는 집에 돌아와 또 방을 뒤지다가,
또 푸른영상에 전화도 했다가(혹시 그곳에 가방을 두고 왔을까봐)
그러다가 가방을 찾았다.
유부제는 미지근하게 데운 이온음료를 마시고 곤한 잠을 잤다.
그리고 황진이는 새끼들에게 젖을 물렸다.
오늘 일기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