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현장 진풍경.
시위 여대생과 전투경찰이 맞잡은 두 손
청주교도소앞 전경·학생 대동한마당
▲ "잘 됐으면 좋겠다~♬" 통일대행진단원과 전경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8월 8일 오늘 청주교도소 앞에는 항의방문하러 온 통일대행진단과 그것을 막으러 온 전투경찰들이 함께 어우러져 남한사회 청춘들끼리의 걸판진 한마당을 열어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십여년간 전국 교도소를 다 돌아다녀 봤지만 오늘같이 희안한 일은 처음입니다" 배은심 여사가 교도소를 떠나며 흥분된 목소리로 내뱉은 말이다. 청주교도소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전국을 돌며 시민선전전도 하고 양심수가 수감돼 있는 교도소 항의방문도 하며 통일운동을 펼쳐가던 통일대행진단 동군은 오늘 오후 청주교도소 앞까지 와닿았다.
버스 안에서 졸던 눈을 비비며 일어난 2백여명의 통일대행진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국가보안법 폐지, 통일인사 석방`을 외치며 청주교도소 앞으로 우루루 달려나왔다. 그러나 교도소 문 앞에는 평소보다 많은 수의 전경들이 하얀 방패를 번쩍이며 지키고 서 있을 뿐이었다.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태양의 열기는 벌써 살갗을 따갑게 파들어오고 있었다.
"전경들이 날씨도 더운데 수고가 많습니다. 지금은 반통일 세력에 의해 우리와 대치하고 있지만 이들도 통일시대를 함께 건설할 청년들입니다. 싸우지 말고 투쟁하도록 합시다!"
6.15 공동선언에만 합의하면 모두가 마음을 모아 통일로 나가자는 `대단결`의 기조에 맞게 전경들까지 배려하는 범청학련 총대장 전태영 씨의 말이 떨어졌다.
아닌게 아니라 겹겹이 걸쳐입은 전투복에 무거워보이는 일명 `화이바`를 머리에 눌러쓰고 땀을 흘리고 있는 그들을 보자 통일대행진단도 안쓰러운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곤봉을 들고 있는 한무리의 전경들이 달려가는 모습에 일순간 분위기가 긴장되기도 했다. 단원들은 그들 뒤로 장난기섞인 박수를 쳐주고 "때리면 맞아주고 치료비 받아 강릉에 가서 한판 놀아보자"라는 사회자의 재치있는 입담도 있었지만 때리기 위한 용도의 무기를 들고가는 그들을 맘편히 바라만 볼 수는 없었다.
▲"우리모두 잡은 손 굳게 잡고 통일해야 돼" 노수희 통일대행진단 단장.
지난 8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학원자주화추진위원장 김상화, 조직사건으로 구속된 안양사랑청년회 안심경 양심수를 특별면회하기 위해 대표단들이 각 15명씩 꾸려졌으나 5명씩만 허용하겠다는 교도소 쪽 답변이 나오면서 막아서있는 전경들을 향해 돌진하는 투쟁도 한두차례 진행됐다.
그런데 조금씩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통일대행진단을 화나게 한 것은 교도소 쪽이지 전경들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발언들이 이어지고 사회자가 `전경·학생 한마당`을 벌이자는 제안을 하면서 굳어있던 전경들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전경과 함께 하기 위한 노래로 통일대행진단들이 입모아 `소양강 처녀`를 힘차게 선창하고 분위기가 띄어져갔다. 열기오른 대원들이 `전경도! 전경도!`를 외치자 모두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전경 쪽 고위간부와 이야기를 마무리한듯한 두 명의 전경이 뛰어나와 앉아있는 통일대행진단 대열 앞에 서는 것이다. `충성!`을 외치고는 `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불러대는 전경의 모습에 대원들의 눈이 휘둥그래지고 박장대소가 터져나왔다. 노수희 통일대행진단 동군 총대장은 그 광경에 흥분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가 전경들과 손을 덥썩 잡고 흔들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한마당이 시작되려 하자 대원들이 방패를 세우고 서있는 전경들을 향해 `앉았으면 좋겠다!`를 외치며 함께 하자는 마음을 전하자 그대로 방패를 내리고 우루루 앉는 모습을 보여줘 또 한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어 특별면회 대표단이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전경대열 중간에 길을 틔워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다.
▲ 통일대행진단의 문예공연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전경들의 모습.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전경 학생 한마당의 열기가 높아졌다. 특히 통일대행진단의 여자단원들이 `자리바꿔!`를 주장해서 전경과 대치하기 위해 앞자리에 서있던 남자단원들과 통째로 자리를 바꿨다. 여자 단원들은 전경들에게 관심을 표하며 반가워했고 남자 단원들은 그 모습에 `우리도 남자다`라며 질투하는 반응을 보이는 등 들뜬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렇게 웃고 즐기는 사이 전경들이나 통일대행진단원들이나 모두 같은 청춘 남녀들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앞서의 긴장감은 눈녹듯이 싹 사라졌다. `화이바 벗으세요`라는 통일대행진단원의 요구에 전경들도 쓰고 있던 철모를 모두 벗고 담배까지 피우며 편하게 이 자리를 즐겨갔다.
애교스러운 여자 단원들의 공연에 웃음을 참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쿡쿡 웃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전경들에게 "여러분의 선배입니다"라는 소개로 통일대행진단 청년단원 등 소위 `예비역`들이 나와서 자신이 전경, 의경 등을 지냈던 경력을 소개하기도 하고 방패를 들고 예전 군복무시절 연습하던 모습을 재연해 서로의 공감대를 더욱 드높이기도 했다.
그동안 집회시위를 막는 역할을 두세번 맡아보았다는 장세호(가명, 소대장) 전경은 오늘 자리에 대해 "나도 학생이었기에 지금 이 분들이 주장하는 바를 이해는 하지만 우리도 맡은 역할이 있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라며 "오늘처럼 같이 어우러지는 자리 너무 좋은데, 앞으로도 집회에서 우리를 만나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전경 한명이 나와 사회를 진행하며 "여기 있는 여학생들을 밖에서 만났으면 참 좋은 인연이 됐을 것이고 남학생들은 술한잔 걸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서로의 심정을 드러내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전경들 중에서 장기를 가진 대표들이 소대별로 나와서 `여행을 떠나요` `네 박자`등 신나는 노래를 부르며 흥겨움은 더해갔다. 그 중 차인표를 닮은 스타 전경이 탄생하기도 해 여단원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기도 했다.
▲ 차인표를 닮아 통일대행진단의 인기를 한몸에 받은 전경.
특별면회를 갔던 대표들이 돌아오고 깜짝 한마당이 자리를 접을 때가 되자 대원들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동안 서로 욕하며 싸우기만 하던 전경들과 이렇게 만나 인간적인 자리를 가지고 보니 서로가 바로 옆에 있는 친구들과 똑같은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힘으로 밀려고 하면 완강히 막아서던 전경들이었지만 서로의 미소와 인간적인 만남으로 마음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던 자리였다.
다음 활동 장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 길에 만난 전태영 범청학련 동군 대장은 "오늘 자리를 시작하면서도 전경들이 받아들어주리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놀랐다. 정세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오늘의 청주교도소 방문은 이제 더 이상 통일운동이 몇몇 소수의 고립된 운동이 아님을, 그리고 그렇게 한명이라도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힘있는 운동방식임을 보여준 '일대 사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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