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타 가다 5입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요. 죄송합니다.
오정훈
디스켓 에러(10월23일 토요일)
아침 일찍 영화제 사무소로 갔다. 아침 9시 30분이었다. 원고를 보내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메일이 계속 보내지지 않았다. 파일 덧붙이기 안된 것이다. 담당자를 찾아서 '메일 에러'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갖고 간 노트북을 사무실로 가지고 와서 다시 보내기로 했다. 영화제 사무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는 프레스 룸에 있는 노트북 한 대 뿐이었기 때문이다. 내 노트북을 연결하려고 하는 데, 다시 문제가 생겼다. 연결 전화번호를 담당자가 모른다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 문제를 생각하다가, 디스켓 때문은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었다.
다른 디스켓을 넣고 다시 한번 저장하였다. 이번에도 안되면 어떻하지. 프레스 룸 노트북에 디스켓을 넣고 파일 덧붙이기를 하는 순간, 성공하였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시계를 보았다. 12시가 다 되었다. 이런 오전 영화를 놓치고 만 것이다. 10시 30분에 상영되는 작품을 보기로 했었는데...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던가 ! 그 작품을 보고 나온 이의 말에 의하면 별로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여튼 이 날 오전은 컴퓨터와 전쟁이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컴퓨터 모드는 일본어로 뜨고, 디스켓은 말썽을 부리고, 보려고 한 영화는 놓치고.
점심 후 뮤즈로 향했다. 오늘 영화 보는 일정은 Muse에서 뉴아시아커런트에 출품한 짧은 단편을 보고, 뮤즈에서 약 5분 거리(여기서 모든 거리는 걷는 것이 기준)인 유학관에서 요리스 이벤스의 작품을 조금만 본다. 그리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15분에서 20분 거리의 forum에서 'Image of Absence'와 Divorce Iranian Style'을 감상한다. 거기서 다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nouvell f1에서 상영하는 'Berlin-Cinema'를 보는 것이다. 쉴 새 없이 영화를 보고, 다시 이동하고, 다시 영화를 보는 일정이다. 마
치는 시간은 약 밤 11시 50분 정도가 될 것이다. 숨이 찰 정도 긴박하게 영화를 보는 이것도 이러한 영화제 덕택일 것이다. 언제 내가 이렇게 마음 놓고 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와 만난 지, 이제 약 5년이 넘어서지만 그리 많은 작품을 본 적은 없었다. 영화제에서 보는 다큐멘터리야말로 나에겐 참으로 좋은 공부가 된다. 차분히 영화들을 정리해 보자. 먼저 뉴아시아커런트의 작품들로서 '가족과 전통'이라는 주제로 묶인 작품들이다.
Notes Before the Revolution((1998/Hong Kong/16mm/color/16min/Ip Yuk-yiu)은 짧으면서도 독특한 작품이다. 홍콩이 반환되는 과정에서 감독이 느끼는 여러 가지 현실에 대한 이미지로 연결되어져 있다. 긴장과 변화를 이야기 하는 뉴스화면과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질료들을 포착하고 있다. 자료집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이 되어 있다. '시적인 영상과 일인칭 내레이션을 사용하고, 부친의 죽음과 역사적인 전환기를 넘어서는 홍콩의 변화이 시대인 1996년부터 1998년을 기록한다. 영화일기 시리즈[홍
콩으로부터의 엽서]의 제1부가 되는 작품이다.' 아트스트로서 감독이 느끼는 사회적 변화에 대해, 개인적 느낌을 담았다. 주관적 해석이 사회적 태도로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For Maya(1997/india/16mm/color/38min/Vasudha Joshi)는 히말라야 지방을 배경으로 gender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개인적 화법으로 진행이 되는데, 여성 4대가 등장하고, 그 마지막 세대인 어린 소녀가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무엇을 배우는가가 말해지고 있다. For Maya는 안정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여성의 변화되는 생활과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담는다. 감독으로서 그녀는 여성의 인생에 관한 근래의 변화는 전적으로 드라마적이고, 특히 중류계급에 의해서 비약적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 3세대를 촬영하고, 그 세대를 통해서 그것의 변화를 쫓고자 시작했다. 고 말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품과 의사소통은 그리 원활하지 않았다. 영사되는 필름은 끊기는 않는데, 내게는 자꾸 블랙이 인서트되었기 때문이다. 두 편의 작품을 보고 난 뒤 나머지 한 작품은 끝까지 보지 못했다.
영화가 끝나자 마자 요리스 이벤스의 작품을 보러 갔다. '어떻게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겼는가' 시리즈 중 여성과 가족에 관한 영화였다. 이 시리즈는 1971년부터 75년까지 제작된 것으로서 12시간에 걸친 대작이다. 중국인과 그들의 일상에 관해서 보여주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문화대혁명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작품은 너무나 일상적이다. 시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하고, 아이를 돌보고 계속 그러한 일상이 반복되었다. 단 조금 다른 것은 여자가 일을 할 때 남자도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사노동의 분담과 공통 역할을 자연스럽게 하는 모습이 특징적이었다.
이벤스의 작품을 다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갖기는 하였지만(?) 시간적 여유를 갖고자 다음 상영장으로 이동했다. 해는 이미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극장을 찾기 위해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이들에게 길을 물었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에게 흥미로운 시선과 말투로서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그들과 나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 이것저것 이야기하며 나를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며, 레프트 ! 라이트 ! 를 주섬주섬 던졌다. 아뿔싸 대충 알았다는 듯이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가는 도중에, 같은 극장으로 가는 일본인을 만났고 그의 안내로 쉽게 극장에 도착하였다.
Image of Absence(1998/Germany/16mm/color,B&W/89min/German Kral)은 나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감독은 영화공부를 위해 떠나 갔던 베를린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차분한 흑백화면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감독 자신이 자신의 가족을 찾는 여행기 같아 보인다. 어릴 적 일찍 이혼한 아버지와 어머니, 이 두 사람에 대한 기억, 그리고 긴 부재의 시간.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각기 따로 따로 찾아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왜 결혼하였는가 ? 왜 이혼하였는가 ? 성격상의 문제는 무엇인가 ? 작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들의 과거 즉, 아버지의 아버지를 찾으며, 인간의 늙음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살며시 그러나 가볍지 않게 던져주고 있다. 이혼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만나는 유일한 장면 속에서도 감독은 그들의 내밀한 감정을 정확히 잡아주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공통된 질문에 상반된 대답을 하는 장면에서는 관객 모두들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즐거움을 던져 주는 작품이었다. 삶에 대한 깊이와 일상적 생활이 주는 생각의 여유를 갖게 했다. 이 작품은 대부분 8mm 카메라로 촬영한 것으로 보였다. 여행 중 이동하는 장면과 사진 자료들만 필름으로 촬영하고 나머지는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하였으리라. 8mm가 다큐멘터리 등장인물에게 주는 개인적 표현의 가능성과 대상자와의 접근 용이성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만약 이 작품을 필름으로 촬영하였다면, 아버지, 어머니가 이렇게 자연스러웠을까 ? 비디오로 촬영된 작품치곤 우리와는 달리 사운드가 꽤 깨끗했다. 자세히 영화를 떠올려 보면, 래벌리어 마이크와 녹음기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가 있었다. 우리 나라에서 제작되는 비디오 작품들이 사운드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비디오 작업을 하더라도 사운드에 대해 더욱 관심과 기술적 고민을 진척시켜야겠다.
Divorce Iranian Style(1998/UK,Iran/16mm/color/80min/Kim Longinotte,Ziba Mir-Hosseini)은 한마디로 유쾌한 영화이다. 이혼법정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여러 가지 사연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이란에
서 여성에게 이혼이란 얼마나 기구한 사연을 갖게 하는가를 보여준다. 이혼법정으로 가는 출입구는 두 개다. 하나는 남성만이 다른하나는 여성만이 출입을 하게 되어 있다. 여성이 출입하는 데는 까다로운 것이 하나 더 있다. 화장이 너무 진해서는 안된다. 출입검사를 하는 여직원은 법정으로 가는 여성에게 화장이 너무 진하다고 조금 더 연하게를 주문한다. 신청 여성 또한 엉거주춤 그것을 받아들이며 화장을 지운다. 작품은 이러한 에피소드들을 자연스럽게 담아가고 있다. 이란에서 여성에게 이혼이란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무슨 조건이 그리 많은지. 또 이혼을 하게 되면 받게 되는 위자료와 양육권 문제 또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이혼에 얽힌 다양한 사건들을 법정에 출두하는 여성을 중심으로 그들의 고통과 웃지 못할 희극을 그리고 있다.
오늘 마지막 영화
Berlin-Cinema(1997/Switzerland,France/video/color,B&W/106min/Samira Gloor-Fadel).
너무 어렵다. 장 뤽 고다르가 인용되고, 빔 벤더스가 실제 등장하며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던지고, 여러 가지 시와 소설이 등장하고, 오즈, 안토니오니, 파스빈더, 포드, 뤼미에르 까지 언급하고 있다. 시적인 영상을 통해 감독 자신이 생각하는 내면적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듯 보이는데, 감을 잡기가 어렵다. 내겐 이런 커다란 질문과 담론 속에 빠져 드는 것보다는 단지 사운드의 다양한 기교를 배울 수 있는 교과서처럼 다가왔다. cut과 cut 사이 또는 scene과 scene 사이를 넘나드는 사운드의 매력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영화였다. 어떻게 저런 사운드 연결과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었을까 ? 106분이라는 시간 동안 머리를 아프게 하는 자유와 영화 그리고 고독이라는 단어 보다는 현실적 문제에 집착한 나의 영화보기의 실패인가 ? 해설의 한 구절을 찾아보자. 시적인 영상과 아름다운 정숙의 가운데 놓여진 도시 베를린을 빔 벤더스의 영화론과 함께 흐르는 내성적인 로드무비.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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