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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냥 쓸쓸해져서
번호 117 분류   일반 조회/추천 314  /  122
글쓴이 류미례    
작성일 1999년 10월 25일 05시 08분 27초
요즘 <나눔의 집> 홍보 비디오 작업을 하고 있다.

말이 홍보 비디오지,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니, 내 생각이 아니라 나한테 느껴지는 무게는

그 어떤 것보다 큰 것 같다.

그냥... 잘 하고 싶다.

봉천동 나눔의 집 후원인들에게 보여지는 것이고

또 그 후원금의 많은 부분은 정신지체인들이 주로 모여있는

재활센터에 쓰여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정말 잘하고 싶다.



나는 장애인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후.. 오만이지.

94년, 내가 세상으로 스스로를 격리시켰을 때,

나는 통신만 하고 지냈고,

그 시간에 알았던 동호회 중에 두리하나라고...

하이텔 장애인 동호회가 있었다.

나는 94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그 곳을 지켜봤었고

가끔씩 일일찻집이 있거나 전체모임이 있으면

내가 아는 사람들과 같이 회계를 보거나

차량지원 자원봉사를 하곤 했었다.



나는 그렇게 구화를 알았고(수화 말고, 입 모양 보고서 뜻을 아는...)

시각 장애인의 팔을 잡는 것이 금지라는 것도 알았다.

계단이 많은 세상의 길들에 대해서 문제라는 것도,

그리고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파했었다.

말하자면, 세상에 대해서 좀더 넓게, 그리고 세심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고민이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그렇게 주눅이 들어가며 깨우쳤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나눔의 집 작업을 맡으며

내가 안다는 것이 얼마나 좁았던가..그런 생각 했다.

정신지체의 의미는 잘은 모르지만 지능 70(75?) 이하의 사람들이라고한다.

재활, 그것도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며 적응하게 하는 것.

말하자면...통신을 할 수 있는 장애인들은

최소한 지능 75이상이었던 거 같고

이 사람들은 내가 알던 어떤 사람들과도 다른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며 내가 안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웠다.



어제, 옛날 하이텔 한국사 동호회에서 내가 헤맬 때

비슷하게 헤매던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갑자기 서울에 직장을 옮겨서 할 일도 없고 그래서

내게 전화했다고 했다. 전라도 살던 그 사람, 5년 전 수첩 뒤적거리다

내 전화 번호 있어서 전화해봤는데 연락이 되었다고 하며...

휴일에 할 일 없어서 심심해서 전화한다고..



나 촬영 있다고 했더니 그 사람이 따라가도 되냐고 했다.

그래서 뭐..오라고 했다. 신경 못 쓰니까 알아서 오라고.

여해문화공간에서 하는 <청소년 꿈의 광장>을 열심히 보던 그 형은

나중에 밥을 먹으며 "우리 애들도 데려올걸.."자꾸 그랬다.

일요일도 한다고..애 데려오라고 하니까(그 형은 애가 3살인데..)

그게 아니라 자기가 가르치는 애들..이라고.



알고 보니 그 형은 내가 모르는 동안에

특수교사 자격증을 따고

그리고 33살? 아마 그 나이인 것 같은데

초임으로 서울에 온것이었다.



나는 비염 때문에...특히나 환절기라 공기적응이 안되어서

자꾸 훌쩍거리며 '정신지체'에 대해 물었다.

제약회사에 다니다 이번 9월에 특수교사가 된 그 형은

내게 비염에 잘 듣는 약을 소개해주다...말했다.

"비염이 완치가 안되는 거 알아?

정신지체도 완치가 안된다.

너는 완치가 안되는 그 비염때문에 약을 쓰기도 하고...

그리고 익숙해져있잖아. 불편하게.

정신지체 재활이라는 거..바로 그런 거란다.

부족한 한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거 찾는거.

그렇게 세상에 익숙해지며... 한 역할을 하는거."



감독님이 옛날에 그런 말 했던 거 기억난다.

"장애인에게 병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관계,

내가 추구하는 관계"라고.



그 형은 막 애들 얘기를 했다.

1,2,3,4를 잘 못 세서

롯데월드로 소풍 갔을 때 일일히 계산해줬던 얘기,

땡땡이 치면 오락실 뒤지면 있다는.....

지금 고등학교 애들은 다들 PC방 가는 그런 상황에서..

그리고 얼마나 예쁘고 착한가,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애들을 때리는가....



많은 부분 공감할 수 없었지만 그저 그런 생각했다.

최소한 당신은 나처럼 주눅이 들어있지는 않구나..



난 그렇다.

이번 3월에, 하이텔 동호회 두리하나에 가서

비디오 촬영 할 때에도

내가 두 발로 걷고 카메라를 들었다는 것이

너무 죄스러웠다.

이해할 수도 없었던 그 죄스러움.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익숙해졌긴 했지만...

같이 갔던 김성환이 내게 "넌, 촬영 안되는 애야"라고 말해서

난 나중에 걔랑 대판 싸웠었다. 서러워서.

내가 왜 그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내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 죄스러움, 그 주눅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지만....글쎄, 그게 나의 선 자리겠지.

나, 항상... 감정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일 뿐이니까.

그런 얘기 변명일 뿐이었겠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이런 생각한다.

세상에 대해서, 장애인 재활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하는

나눔의 집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영상물을 만들고 싶다.



또 이런 생각도 한다.

세상에 할 일이 정말 많았구나.

그리고... 내가 좀 더 유능한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더 많이, 더 잘할 수 있었으면...



그리고 그게 잘 안되어

괴롭고...좀 쓸쓸해진다.

난, 참...안되는구나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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