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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야마가타에 가다 2
번호 114 분류   일반 조회/추천 286  /  122
글쓴이 alvin2    
작성일 1999년 10월 23일 16시 12분 19초
야마가타에 가다 제2신입니다.

현지에서 짬짬이 적는 글이라 내용이 정리가 잘 되어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내용을 놓치지 않고 전하려는 오정훈 감독님의 모습을 그려 보면서 즐겁게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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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액티비즘이란 ? (10월20일 수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났다. 평소 같으면 한참 잠을 자고 있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을 시간이다. 이렇게 일찍 나서 이유는 호현이와 종필이가 이 날 오전 10시30분부터 시작되는 'filming-screening-changing' 행사에 상영 테이프도 확인하고, 발표되는 내용에 대한 부분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 일찍 나서야 했다. 나는 이들과 동행하고 싶었다. 빨리 야마가타에 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따로 오기도 조금은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경에서 6시16분 기차(신간선)를 타고 야마가타로 갔다. 기차는 도심을 벗어나 자그마한 산들과 추수를 끝낸 논을 지나쳤다. 집들은 낮고 아담했다. 담장이 없는 것이 눈에 금방 띄었다. 기차에서 900엔 정도의 도시락을 먹으며 소풍 온 아이처럼 즐거워 했다. 동행 중 변재성씨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이 기차로 야마가타에 도착했다.



우리는 야마가타 역에서 걸어서 약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시민회관으로 향했다. 작은 공원처럼 꾸며진 바로 이곳에서 filming-screening-changing' 행사가 열린다. 약 350석 정도의 규모로 되어있으며, 동시 통역이 가능한 부스를 설치해 놓았다. 시민회관에서 비디오 운동에 관한 작품을 상영을 하다니, 우리 상황에 비추어서 볼 때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관공서는 아직까지 넘겨 볼수 없는 공간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시민회관에는 small hall과 large hall 두 개의 극장을 갖고 있었다. 작은 곳은 비디오 액티비즘과 사례발표를 하는 곳이고, 큰 곳은 국제경쟁 작품을 상영하는 곳이었다.



여튼 가장 먼저 들어서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video act - 한국독립영화협회처럼 일본에 있는 독립영화협회격인 '민중미디어연락회'의 프로젝트, 이것은 주로 유통과 소통을 담당하고 있다.-에서 마련한 부스이다. 이 부스에는 한국과 일본의 비디오 작품들이 인권,역사,여성,노동 등 주제별로 묶여져 있으며, 작품 안내와 사회운동에 관련한 리플렛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극장 출입구 옆 TV에서는 이 행사기간동안 상영되는 작품들의 예고편이 나오고 있었다. 너무나 잘 준비되어 있다. 한국에서 미리 이곳 사정을 알고 약간의 준비를 해왔다면(비디오 예고편, 일본어 또는 영어로 표기된 비디오 테이프 표지나 기타 안내물 등) 보다 효과적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몇편 가지고 오기는 했으나, 일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우리가 극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김동원 감독의 '또 하나의 세상' 상영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약 30여명의 관객과의 진지한 대화였다. 빈민운동과 한국의 경제위기에 대한 것, 공동체 논의 등 다양한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한국 작품들이 이 날에 모두 상영하기 때문에 필자는 다른 곳에는 가지 않고 시민회관에서만 있기로 했다. 무언가 집중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영은 주제별로 이루어졌다. 도시빈민에 관한 작품은 '또 하나의 세상' 홀로 상영되어지고, 나머지는 젊은 세대, 노동운동, 여성, 홈리스 등의 주제로 일본과 한국의 작품이 각 1편씩 나란히 상영되었다. 두 나라간의 공통점과 접근방식, 제작형태에 대한 비교를 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획이었다. 노숙자를 만든 박종필은 신주꾸에서 일어난 노숙자들의 투쟁을 만든 사람과 너무나 공통점이 많았다. 먼저, 노숙자 스타일이다. 말이 어눌하면서 상당히 길다. 노숙자에 대한 애정이 깊다.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술을 많이 마시면 누가 감당을 할까 의심이 될 정도로 시끄러워진다.



관객과의 대화 역시 한일 감독이 나란히 서서 진행하였는데, 제작동기와 제작사에 관한 질문, 그리고 제작비 질문이 비슷하게 등장하였다. 상영이 종료된 후 저녁 7시부터 심포지움이 시작되었다. video activism-report from korea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심포지움은 한국에서 김동원, 김명준, 일본에서는 비디오 프레스의 松原 明(matsubara akira), video act의 tsuchiya utaka가 참석하였다. 한국상황이 중심이 되는 것이라 약간은 식상했지만, 간단하게나마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는 것은 의미있었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한국과 일본이 생각하는 video act의 개념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직접 설명하는 것보다는 각 발언을 직접 듣고 그 의미를 생각했으면 한다.



김동원 ; 오늘 한국과 일본의 비교는 매우 유익했다. 개인적인 느낌은 한국 작품이 일본 작품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video act의 정신은 일본에게서 느꼈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 액티비즘의 이중성에 기인한다. 액티비즘의 시작은 80년대 독립영화로부터 시작하였다. 90년대 정치 민주화와 비디오의 보급은 새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80년대 액티비즘을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소수이다. 푸른영상의 변화를 통해서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푸른영상은 정신(act)와 기록영화를 발전시킨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90년을 넘어와서 보면 초창기 사회운동을 다루던 것에서 새로운 주제를 다루려는 경향이 있다. VHS에서 DV로의 변화는 기술적 진전을 말한다. 소박하고 거친 화면에서 탈피하려 한다. 선전 선동에서 세련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이것은 외부의 요구이기도 하다. 도시빈민에 관한 작품이 선동적인 스타일로 만들어지면, 어떤 사람은 '넌 아직까지 그런 걸 하느냐'고 물어본다. 직접적인 사회운동과이 결합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한국독립영화협회도 비슷한 실정이다. 협회 안에서 액티비스트들은 소수이다. 새로운 개인들과 기운에 기대를 걸고 있다. 나는 그것을 살리는 구조를 모색하고 조직하는 역할을 맡았다. 앞으로 그런 것을 한국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배가 고파서 이만 한다. - 이 날 한국 발표자들은 모두 배가 고프다라는 구호를 웃으며 외쳤다)



김명준 ; 노동자 뉴스단은 1989년에 설립되었다. 지금까지 약 50편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전문적인 사람들을 양성하는 교육프로그램과 public access 관점으로 하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자뉴스단은 이렇게 제작과 교육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80년대의 원칙이 중요하다. 변화하는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으면서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액티비스트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 그러나 이전 활동이 상당부분 많이 발전하였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였고, IMF이후 사회 문제 의식이 성장하였다. 미디어 운동의 관심이 증가하였으며, 퍼블릭 엑세스 활동이 늘어났다. 공간이 늘어나고 청소년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일어나고 있다. 기술적 변화가 저예산 제작을 가능하게 하고 있으며, 이는 빠르고 높은 수준의 작품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제는 대안적 배급구조가 많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하부구조로서 지원시스템의 부족, 표현의 자유 문제, 국가보안법 등이 사유를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 일본의 배급은 배울 점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적으로 프로그램을 유통시키는 것이 서로의 이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교류에는 4가지 차원이 있다. 정보교환, 프로그램 교환, 국제적 관점을 갖는 것, 미디어 정책을 국제적 차원에서 압력을 하는 것 등이다.



- 이 발제가 끝나고 노뉴단의 짧막하지만 강한 비디오가 상영되었고,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생각하는 점을 들어보기 의해, 정호현과 박종필의 보충발언이 있었다.



tsuchiya ; 액티비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데, 비디오 액티비스트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 액티비스트는 다루는 문제가 정치적인 것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다양한 주제가 있을 수 있다. 주제가 아니라 미디어를 민주화 하는 운동이 액티비즘이다. 배급하고, 조직하고, 제작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김명준 ; 미디어의 변화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넓은 의미에서 비디오 액티비즘은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데 그 초점이 있다.



김동원 ; 나는 좁은 의미로 비디오 액티비즘을 정의하고 싶다.



tsuchiya ; 이번 우리가 다루는 주제가 만들다, 보이다, 바뀌다 이다. 나는 만들고 난 후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비디오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영향을 주고 어떤 방향으로 옮겨가는지. 과거에는 제작과 상영이 분리되어 소통이 없었다면, 현재는 일원화 되어있다.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동원 ; 아까 좁게 규정한다고 했는데, 비디오 활용 즉, 목적의식이 뚜렷이 있는 것이 비디오 액티비즘이다. 목적의식을 살리기 위해서 예술성은 포기할 수 있다. 만드는 것이,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비디오 액티비스트는 액티비스트이다. 효과를 활용하는 사람, 강한 자기 주장과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말한다.



토론회를 마치고 한국과 일본에서 생각하는 비디오 액티비즘의 간략한 상을 그려 보았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미디어 민주화는 중요한 문제틀이라고 생각한다. 내일 종합토론이 조금 더 진전된 논의를 벌일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약 20여명의 한국과 일본의 참가자들이 일본술(日本酒)과 맥주를 마시며 뒤풀이를 갔다. 내 옆자리에는 아시아 지역의 종군위안부를 제작하고 있는 video juku의 ikeda씨가 앉았다.

그녀는 나눔의 집 강덕경 할머니에 관한 'We Shall Always Remember'(1997/16min/video Juku)를 제작하였다. 풋풋한 우리네 아줌마 같은 인상으로 편안하게 사람을 대해 주었다. 특히 의사 전달을 위해 일곱단어 영어와 후루쿠 일본어를 한자까지 써 주며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video Juku는 1997년 생긴 모임으로 주로 여성회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시아 지역 여성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종군위안부에 대한 아시아 각지의 실태를 제작하고 있다. 뒤풀이는 1차에서 마무리되지 않았다. 결국 한국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500엔으로 푸짐히 먹는 야마가타 지정 술집으로 가는 2차로 이어졌다.(우리는 술을 너무 좋아해.^^;;)





요리스 이벤스 ? 쯔찌모토 ! (10월21일 목요일)



오늘은 비디오 액티비즘을 벗어나 다른 다큐멘터리를 보기로 했다. 워크샵도 좋지만,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여의치 않았다. 하루가 이렇게 길게 느껴지기는 오랜만이다. 새벽별을 보고 일어나고 잠자다니 ! 몸과 마음이 피곤하여 영화관에 가는 것보다 뭔가 정리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동안 두 작품을 보았다. 'The 400 Million'(1939/USA/35mm/B&W/53min/Joris Ivens)와 비디오 액티비즘에서 상영된 Memories of Kawamoto Teruo(1999/Japan/video/color/70min/Tsuchimoto Noriaki)이다. 무게 있는 사람들의 작품이라 조금은 기대를 갖고 보았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상대적이라고 했던가 !



요리스 이벤스는 네덜란드 사랍으로 1898년 태어났다. 베를린에서 사진공학을 공부하고 [다리]라는 작품으로 제작을 시작하였다. 그후 요리스 이벤스는 스페인, 중국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왕성한 작품과 정치활동을 보였다. 'A Tale of the Wind'(1988/color/78min/35mm)를 마지막 작품으로 남겼다. 이 작품은 5대륙으로부터 제작을 모으고, 격동하는 20세기를 보여주는 이벤스 작품의 완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88년 베니스 영화제 상영되었고, 이벤스는 그간 공로를 인정받아 금사자상(Goden Lion Award)을 받기도 하였다. 요리스 이벤스에 대한 자세한 것은 [가치의 전복자 1]이나http://www.ivens.nl을 참고하면 좋겠다.



'바람 이야기'는 꼭 보고 싶은 데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른 작품과 겹쳐지지 않으면, 갈등을 겪을 것 같다. 참고로 야마가타 영화제는 모두 8개의 공간에서 오전 10시부터 밤 11시 정도까지 각기 다른 영화들이 상영된다. 각 공간은 전체적인 영화제 프로그램에 따라 나뉘어진다. 예를들면 요리스 이벤스 특집은 공공도서관 성격인 야마가타현 유학관(遊學館)에서 뉴아시아커런트는 뮤즈(Muse)에서 상영된다. 프로그램 내용에 따라 공간을 분리한 것이다.



다시 영화를 본 이야기로 돌아가면, [400억]은 1937년 중국 공산당과 장개석의 국공합작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은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죽음, 승리하고 돌아오는 장면 등 이 기간 동안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전투는 중국군이 이긴 몇 안되는 전투중의 하나라고 한다. 자료집에는 [400억]을 만들 당시, 국민당은 공산당이 찬미되는 것을 두려워 했고, 그래도 이벤스는 공산당과의 접촉에 성공하였다고 한다. 공산당으로부터 카메라를 선물받고, 어떤 장면은 그들 자신의 버전으로 기록할 수 있었다. 여기서 사용한 카메라는 현재 북경의 혁명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작품은 대부분 담담하고 안정적인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강한 설득이나 주관을 배제한 관찰의 느낌을 던져주고 있다. 기록자로서 중국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빠른 흐름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역사적 서술이라고 할까. 그렇다 보니 감정 증폭을 위해 사용되는 클로즈 업의 사용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full shot이나 long shot이 많았다. 언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관찰적 서술은 지루함을 동반하기도 했다. 눈꺼플이 조금씩 내려앉는 것과 싸워며 영화를 보았다.



치열한(?) 영화보기 전쟁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찾았다. 시간이 없어 간단히 라면(ラ-メン)을 먹었는데, 식당에 들어서서 라면을 선택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무슨 라면이 이렇게 많지. 결국 후루쿠로 물어보다가 식당 여직원이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알고 보니 조선족이라고 한다. 그녀의 도움으로 고기가 안들어가는 라면을 시키려고 하는데, 막상 나온 것은 다른 것이었다. 찐한 고기 국물에 면은 짜장면이었다. 대충 꾸겨넣은 후 시민회관으로 향해야 했다. 일본 라면은 한국사람에게 극과 극의 인상을 준다고 하는데, 사실인 것 같다.



시민회관에서는 어제와 연결하여 일본 쪽 작품들을 중심으로 상영이 계속되었다. 아까도 이야기 한 것처럼 여러 가지 사정으로 'Memories of Kawamoto Teruo'(1999/Japan/video/color/70min/Tsuchimoto Noriaki)만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욕조에 비쩍 마르게 앉아 있는 사진으로 기억되는 미나마타병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Tsuchimoto Noriaki의 작품이다. 쯔치모토는 일본 뿐만 아니라 국외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환갑이 넣은 나이에도 아직도 정열적으로 후배 다큐멘터리스트들을 위한 워크삽과 제작활동을 멈추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 감독의 이름 때문인지, 보통은 30명 정도이 사람들이 상영장을 채우는데, 거의 100여명까지 관객이 육박했다. 또 드문드문 일본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여러 명 보였다.



작품의 내용은 미나마타 문제가 생기고 지속되는 과정에 함께 했던 사람에 대한 활동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젊은 날부터 줄곧 감독과 함께 투쟁(?)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감독은 그를 위해 영화를 만든 것이다. 감독이 갖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깊이를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은 작품 내적인 요소보다는 감독이 상영이 끝나고 간단한 제작 후기를 말하는 데서,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연륜이란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계의 중요성을 얼마만큼 지닐 수 있는가에 따른다고 생각한다. 쯔치모토 감독은 그런 사람이었다.



모든 비디오 상영이 끝나고 '만들다, 보이자, 바꾸자' 한일 비디오 액티비즘 대토론회가 열렸다. 일본 측에서는 video press, video act, video Juku, Akame, 개인이 나왔고, 한국에서는 푸른영상 김동원, 노동자뉴스단의 김명준이 참가했다. 어제에 이어 비디오 액티비즘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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