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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창회
번호 103 분류   일반 조회/추천 294  /  127
글쓴이 류미례    
작성일 1999년 10월 21일 09시 38분 37초
나는 다큐 0.7 워크숍 1기 수강생이다.

2기가 있는지 그 뒤로 진행이 되었는지 잘 모른다.

아마 우리로서 끝난 것으로 알고있다.

그 뒤로 강좌가 진행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바가 없으니까.

어쨌든 나는 다큐 0.7 워크숍 1기수강생이다.

어제... 그 때 같이 있었던 사람들을 만났다.

2년 만이었다.



96년이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자기방어기제가 있어서

상처는, 감당하기 힘든 상처는 잊는다고 하더라.

내게는 24살부터 26살까지, 그 2년 동안의 기억은 없다.

친구가 가끔 그때 얘기를 하면 나는 묻는다. "내가 그때 그랬단 말이야?"

...기억이 없다. 내가 아끼고 사랑했던 286컴퓨터에...

bak화일에 남아있는 낙서 몇 개로 나는 그때를 기억할 뿐이다.



대학을 5년 반을 다니고

94년에 졸업을 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살아갈 길을 잃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이제 하고 싶은 일이 없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24살, 좋은 나이였는데

나는 그 때 생각했다.

앞으로 내게는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없을 것 같다...

나는 말없는 사람이 되어서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살아갈 것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난 스스로를 격리시켰다.

그 2년 동안 나는 안암동엔 절대 가지 않았다.

친구? 선배? 나는 과거로부터 나를 차단시켰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냥 사는 거야...아무 생각없이.





우리 엄마는 처음에 말을 못하다가... 울었다.

학교에 다닐 때 나는 엄마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살았다.

엄마는 내게 그런 말도 했었다.

"너, 나 죽으면 울지 마라.

이렇게 내 가슴을 찢어놓고, 나중에 나 죽은 다음에 너 와서 울면

내가 죽어서라도 일어나서 니 머리를 칠거다... "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난리를 치고

엄마가 바라는 대로 살지 않았던 그 5년 반 동안

엄마는 나때문에 많이 속상해했었다.



그런데... 그 때 알았다.

엄마가 정말 힘들어했던 건

엄마가 바라는 대로 살지 않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자기근거를 잃고 헤매는... 그런 나의 모습이었다.



그 때, 식탁에 앉아있었던 엄마, 오빠, 동생...

애써 내게 말했다.

아니야, 뭔가 있을거야. 잘 생각해봐. 너는 그런 애가 아니었잖아...

누군가는 결혼을 얘기하고, 또 누군가는 대학원을 얘기하고...

그리고 그 때 울던 엄마가 말했다.

유학을 가라.

다시... 새로 시작을 해라. 새로운 공간에서...다시 시작을 해라.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거다...

너 음악 좋아하지, 소설이나 시 읽는 거 좋아하지,

그리고...영화 좋아하잖아.

그 중에 뭔가를 하나 하면 될거다...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 던가...

러시아에 있는 언니는 9월에 개강하는 그 학교의 커리큘럼을 보내왔고

나는 러시아어를 배운다며 학원을 알아보았었다.

그리고... 다큐 0.7 강좌를 들었다.

단지 4명 뿐이니까... 잘 배울 수 있을거다...

유학을 준비하는 그 몇 개월 동안. 잘 배워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박기복 감독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안만희 선생님에게 감사한다.

그 두사람은 우리를 가르친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두사람을 만나...

지금 이렇게 이 땅에서 살고 있다.

'가난한 영화 다큐 0.7'

지금도 가지고 있는 그들의 명함에는 이름 앞에 그렇게 써있다.



나는 그 두사람을 만나

다큐멘터리를 알았다.

다큐멘터리는 내게 구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때 그 동창생들을 만나

옛날을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부럽다고 했다. 너만 남았네, 쓸쓸해 하며.

나는 그게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나는 푸른영상에 있으니까.



이제는 은행 전산실에 근무하는, 그 때 동창이었던 언니에게

나는 물었다.

다큐는....이제 접었나요?

언니가 말했다.

"지금 하는 일, 50%만 좋아한다.

내가 100% 좋아하고, 하고 싶어했던 다큐...

그 짝사랑이 너무 힘들었어.

포기하고 나니 이제...마음이 편해"

12월이면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언니.

96년 그 때, 곧 떠날 나를 생각해 주며

소풍을 가고 MT를 가고

그렇게 광명에서, 양수리에서

미래를 얘기하고 영화를 말하던 그 사람들.

이제 나는, 우리는 떠나는 언니를 생각하며

또 소풍을 가고, MT를 가려고 한다.



가장 그리운 것?

그건...0.7옥상에서 술을 마시던 기억이다.

브로드웨이 극장 근처, 그 옥상에서

우리는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술을 마셨다.

술병을 쭉 늘어세우며

우리 이 옥상이 꽉 차도록 술을 먹자, 웃으면서

그렇게 지냈다.



그때 선생님들은

'삶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작가를 말했었고

우리가 진지한 사람이 되기를 바랬다.

카메라 워크에 관심이 많았던

나의 파트너였던 경현형과

박감독은 항상 언쟁을 했다.

카메라 워크에 대해 묻는 경현형에게

항상 박감독은

그런 거 신경 쓸 동안에 대상과의 관계나 고민해.

냉소적으로 내뱉었고

경현형은 발끈하며... 그렇게 언쟁을 했었다.

지금 박감독은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안만희 선생님은 뭘 하고 있나. 그 사람들이 그립다.



푸른영상에 돌아온 지 2주일째다.

수익사업으로 바쁘다.

그리고...항상 들어왔던 얘기를 듣는다.

너, 이제 작품 해야지..

얼마전까지는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나도 해야하는데...그런 조바심.

지금? 지금은 편안하다.

나는 처음부터 3년간 조연출만 하겠다고...

그런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나는 다큐멘터리를 너무나 사랑하는 것같다.



숨을 쉬듯이

밥을 먹듯이

그렇게 편안하게 다큐멘터리를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길을 잃고 헤매는 내게

구원처럼 다가왔던 다큐멘터리.

여전히 나는 경외감을 가지고 다큐를 생각한다.

그리고...좀더 편안해졌을 때,

그 때 내 작업을 하고 싶다.



100%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은 숨막히다.

그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나는 나를 잃고, 그 사람만을 본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할까, 바보같은 이런 나를 사랑할까,

그런 조바심을 가지며...



100% 좋아하는 다큐를 대하는 것도 역시 숨막히다.

좋은 옷감을 망치는 서툰 재단사가 될까봐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그 얘기들을

애써 꼭꼭 가슴에 묻는다.

아직은 때가...아니지 않는가.

대상과의 약속이 있는데

내가 그 사람들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을까

두려워하며.



편안하게 다큐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고

가슴 속에 꼭꼭 접어둔 나의 얘기를

조심스럽게 펼쳐보이겠지.

그 때가 언제쯤일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처음에 약속했던 3년, 그 시간을 바라본다.

그랬다. 나 처음에 푸른영상 들어올 때 그런 생각했었다.

선배들...열심히 작업할 수 있도록

총무든 회원관리든

단체로서의 푸른영상이 굴러가는

그런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신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그리고 MBC에 갔다 온 다음에

그런 생각, 더 많아졌다.



PD들은 정말 편하더라.

촬영, 서치, 그 모든일에서 해방되어

머리로만 생각하고 생각만 할 수 있도록

작가, AD 그런 존재들이 모든 잡일을 다 해주더라.

돌아와서 선배들을 생각했다.

방송국 PD만큼은 아니더라도

당신들이 좀더 좋은 조건에서 작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생각을 했다.

수익사업, 서치, 그런 일들 작업때만이라도 잊고서

그냥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할 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만큼인지...

잘 모르지만.

그리고

그렇게 다큐랑 친해질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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