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진/1997/50분 제1회 여성영화제 출품, 인디포럼97 상영
내가 처음 봉천동에 가게된 계기는 푸른영상의 김동원 감독을 돕기위해서였다. 당시 봉천동에 살고 있었던 김동원 감독은 주거대책위 위원장을 맡게되 촬영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로 맡겨졌다. 이전의 작품들은 철거민의 '투쟁'에만 촛점을 맞춰 기록했었다. 그러나 나는 철거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주민들간의 갈등과 화합, 즉 철거라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이 어떻게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지 그 과정을 기록해 보고 싶었다.
다음의 이야기는 지난 1년 동안 봉천동 철거과정을 촬영하며 기록해 놓은 글이다. 처음에 나는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주민들의 철거싸움을 지켜보기 위해 일정정도의 거리감을 두고 촬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난 주민들의 이야기와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들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주민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주대위 사무실에서 보낸다. 사무실에 있다보면 아줌마들이 남편에게 맞은 얘기, 구박당한 얘기를 재밌게,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그 얘기들에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익숙해졌다. 봉천동에 살고 있는, 가정을 갖고 있는 여자들의 대부분은 과거에 한번쯤 아저씨의 바람과 폭력에 시달렸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것을 으례 한번쯤은 그럴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술 좀 그만 먹으라고 싸우면서도 그 속에는 남편에 대한 사랑이 담겨져 있고 사랑타령을 부르는 어느 아저씨의 노래속에서 그들의 사랑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주민들은 서울대에서 장터를 벌이기도 하고, 5월 노동절 대회에 참여해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배워나가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민들에게 있어 주대위 활동은 단체 생활에 대한 경험, 감투를 통한 신분 상승, 성격변화, 공동체 생활에 대한 즐거움등을 안겨다 주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공동체 생활속에 주민들은 작은 불만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총무님의 학생을 다루는 듯한 말투에 기분나빠하기도 하고, 열심히 활동하는 여자분들이 아저씨를 데리고 나오지 못하는 것에 대해 종종 말싸움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집행부가 가시적인 결과물은 보이지 않고 공가(空家)만을 자꾸 내줌으로써 나중에 강제철거를 당하는건 아닌지 불안해 했다. 어느덧 주민들과 나는 함께 울고 웃고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과 나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음을 느꼈다. 카메라라는 벽이.... 주민들과 친해지게 되면서 몇몇 주민들은 나에게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주대위 활동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과의 친밀함은 카메라를 쉽게 들지 못할 이유이기도 했다. 활동하면서의 고민과 개인적인 갈등을 찍고 싶다는 생각 이전에 사적인 얘기를 나한테 털어놓는데 그것을 카메라로 포착한다는 것이 좀 그랬다.....나에게 카메라는 주민들과 친해지게 된 수단이기도 하지만 주민들과 더이상의 친밀함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나돌면서 주대위 사무실에도 겨울이 왔다. 김장을 준비하느라 아줌마들이 바삐 움직이던 어느날, 집행부에 대한 내부적 불만이 드디어 부위원장과 백수남씨의 싸움을 일으키게 했다. 싸움의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난 그들의 끝도 없는 욕설과 폭력(?)에 객관적인 입장으로 방관하듯이 찍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혹시 내가 카메라를 들이댐으로 인해 싸움이 중단될 까하는 기대는 어설픈 것이였고 그들은 나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채 열심히 싸웠다. 싸움이 진정된 후,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아줌마가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어와 고소를 하겠다고 나서며 사건은 확대되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는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자존심싸움이 벌어졌지만, 임원들의 설득과 주변 사람들의 설득으로 가해자인 부위원장이 사과를 하고 치료비를 무는 것으로 싸움은 종결됐다. 하지만, 형식적인 종결일뿐 서로에게 쌓여 있던 감정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번 싸움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집행부에 대한 옹호파와 반대파로 패가 갈렸음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주민들의 싸움은 나를 실망시켰다. 그리고 싸움을 해결하는 과정 또한 나를 실망시켰다. 깊게 패인 오해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싸움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집행부는 집행부로서의 고민과 갈등이 있고, 주민들은 주민으로서의 고민과 갈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왜 그것이 하나로 뭉쳐지지 못하고 패갈림과 싸움까지 일으키게 했는지..... 해결도 오해가 완전히 풀린 상태에서 된 것도 아니고, 형식적인 화해만 오고 갔다는 것이 아쉽다. 몇달이 지난후 봉천동에 가보았다. 주민들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전날 마철수 아저씨가 술먹고 사무실에 들어와 기물을 파손하고 난동을 피웠다고 하는데 어느새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마철수씨는 술을 좋아하다보니 사람들과 만나면 술을 먹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실수를 하게 되는데, 열심히 하려다 그리된 것 뿐이라며 미안해 했다. 아저씨의 사고는 이기적이거나 타산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저씨는 솔직하고 순수했다. 주민들은 처음 사무실에 자주 오지 못했던 어색함이 이제는 사무실에 들르지 않으면 좀이 쑤시게 되었고 그러면서 쌓인 동네 사람들과의 애정이 이제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로 변했다. 동네에 애정을 갖고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누구나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열심히 일하는 총무님뿐만 아니라, 동네일에 솔선수범하고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애정을 갖고 있고 서로를 형제처럼 생각한다. 주민들은 조금씩 공동체 삶에 익숙해져 가고 있으며 결코 지금의 생활을 싫어하지 않는다. 재개발이 안된다면 이렇게 모여 사는 것이 좋다는 그들의 말에 희망을 보았다. 앞뒷집 왔다갔다 하며 빌려주고 빌려가고 어느 사회에서도 볼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이해, 그리고 "정이 흐릉께 붙어있다"는 어느 주민의 말처럼 가진 것이 없다는 것과 봉천동에 모였다는 공통점만으로 뭉친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 진하게 뭉쳐 살고 있다. 앞으로도 사소한 싸움은 계속 있겠지만, 걱정되지는 않는다. 주민들 나름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것이고 또 주민들은 어떠한 외압과 내압에도 흔들림 없이 그들이 만들어 놓은 작은 사회를 지켜나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