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제영화제를 다녀왔을 때의 느낌이 그랬다. '마치 다큐영화제나 독립영화제에 다녀온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영화의 바다'라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으로 영화를 선택하고 보면서 가장 기쁨을 느낀 것이 우리나라의 다큐와 단편극영화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토요일, 낮 12시 40분부터 밤 11시 40분까지의 11시간동안 저녁을 라면으로 때운 1시간을 제외하곤 하루를 온통 다큐를 보는데만 쏟아부었지만 왠지 나는, 외국의 가작으로 인정받은 유명작품보다 올해의 수상후보로 올라온, 지금 한국의 다큐들을 볼때 스스로가 피어남을 느낀다..
그건 아마도 이시간 이곳, 부당함과 부조리의 질곡을 헤매는 이들곁에 누군가 함께 하고자 했고 또 그 아픔들이 묻혀 버리지 않고 관객이라는 이웃들이 다시 함께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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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금지]라는 작품이 있었다.
한국인으로의 정체성에 별다른 도전을 받아 본 적이 없는 5천만 남한인들에게 일본에서 <조선>이라는 불안한 정체성으로 살고 있는 교포들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 수 있을까..
일제시대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다 해방후 그 곳에 남은 사람들에게 일본은 그들방식의 편견이 고스란히 담겨진 <조센징>으로서의 신분증으로 <조선>이라는 국적을 부여한다..
그리고 65년? 남한과 일본의 외교관계가 성립되면서 그 <조선>이라는 국적은 <한국>으로 바껴지길 요구받는다..
가고 싶은, 뼈라도 묻고 싶은 고향땅을 두고 일본의 납골당에 혹은 고향에 입국이 금지되는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난민 상태인 <조선인>의 신분으로 남아있는 그들은 말한다..
"그럼, 남아있는 조국, 북한은 또 어떻게 하구요.. 해방전에 조선은 그냥 조선이었습니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했던 곳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북한에 지향을 두고 남한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분단상황이 아니었던 조선, 그 시절을 꿈에 그리는 사람들입니다.."
영화를 찍었던 다큐인의 감독이 부연설명을 했다.
우리가 일본과 수교를 하기 전 20여년 간은 일본에 남아있던 우리민족이 한글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조총련계) 민족학교 뿐이었다. 사람들은 북한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일본의 핍박속에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이어가기 위해서 민족학교를 찾았었다. 그리고 한,일 수교후 그들에게 조국으로 가는 입구는 남한만으로 존재한다. 분단된 조국에서 어쨌거나 그 상황을 인정하고 살아가고 있는 남한의 우리에게, 불안한 국적불명자의 고통을 감수하고 온 몸으로 통일을 고대하고 지향하며 살고 있는 <조선인>들의 깊은 상처가
너무나 생생히 전해진 영화였고 아마도 그들의 상처로 그들만큼이나 속이 쓰릴 다큐인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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