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누구나 공감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 |
"우리 엄마도 그래" 누구나 공감하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
[영화] 류미례 감독의 가족다큐멘터리 <엄마>
이정미 기자
영화나 드라마속에 나오는 엄마들은 모두 현모양처에 교양이 철철 넘친다.
홈드레스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채 다정한 목소리로 남편과 아이들을 식탁으로 이끈다.
그러나 대부분 현실에 존재하는 엄마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딸들은 엄마처럼 살기 싫다는 이야기를 밥먹듯이 하지만 살아가면서 엄마와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엔 당황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게 이 세상의 딸들이다.
여자로서 엄마를 이해하기
그런 과정을 담은 영화가 작년에 개봉한 <인어공주>다.
상상조차 안되는 엄마의 처녀 시절, 지금과 너무나도 다른 또다른 엄마를 보면서 엄마를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는 영화다. 어설픈 딸과 엄마의 화해장면을 넣지 않고 마무리한 점이 영화의 현실감을 높여주었다. 많은 이들이 자신과 엄마를 투영할 수 있었던 이 영화는 극영화라는 제한 때문에 다소 영화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에 비해 류미례 감독이 만든 다큐멘타리 <엄마>는 이 땅에 사는 대다수 엄마들과 딸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느 가족에게나 있을 법한 상처와 가족 간의 애정과 서운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이 영화는 류 감독 가족들의 이야기다. 감독은 ‘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땅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엄마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에 대한 차이, 가족과 여자로서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오래 전에 남편을 여의고 6남매를 키우면서 두 번이나 ‘장한 어머니상’을 받을 만큼 세상으로부터 칭송받아왔던 엄마는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킨 후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여느 자식들이 그렇듯이 감독은 공부를 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며 곱게 늙는 엄마를 기대했지만 엄마는 술먹고 춤추며 노는 일에만 열심이다. 그러다 급기야 남자친구가 생겼다. 그것도 자식들앞에 소개는 커녕 식당아줌마라고 지칭하는 남자친구를.
남자친구가 생긴 엄마를 받아들이는 자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자식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애정을 남자친구에게 듬뿍 쏟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을 애써 감추지 않는 딸들, 자식들에게 당당하게 엄마를 소개하지 못하는 남자친구에게 화가 난 막내. 엄마 걱정보다는 아이 맡길 곳이 더 걱정이 된 감독 자신.
영화가 진행되면서 가족들간의 상처를 보게 되고 또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마지 우리 가족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세상 엄마와 딸들의 고민이 담긴 영화
이 영화에는 세 명의 여인을 통해 이 시대의 ‘엄마상’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가난한 시골에서 자식 5명을 키우기 위해 악착같이 살다가 뒤늦게 사랑을 알게 되고 엄마가 아닌 여자의 삶을 살고 싶어하는 감독의 엄마와 아이 둘을 기르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감독 자신 그리고 또 한 명의 엄마는 감독의 셋째 언니다.
자식중 가장 똑똑해 러시아로 유학을 갔던 셋째 언니가 아이 둘을 낳고 10년 공부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독은 또 다른 자신의 미래를 발견한다.
언제나 일을 하느라 자식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주지 않아 서운했던 엄마의 모습이 현재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린 딸을 탁아소에 맡기는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 감독은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의 여자로 받아들이게 된다.
류미례 감독은 정신지체인의 일상을 담은 <나는 행복하다>로 감독을 시작해 장애인에 대한 영화를 꾸준히 제작해왔으며 2001년 <친구>로 한국독립단편영화제 중편 우수상을 수상했다.
<엄마>는 2001년 옥랑문화재단, 서울여성영화제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제 다큐멘터리 옥랑상을 수상했으며 제작이 완료된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에 상영되었다.
또 2004년 전주 국제영화제 한국영화부문에 초청되었으며 2005년에는 스위스 블랙무비 페스티발에 초청된 바 있다.
다음은 류미례 감독과의 짧은 인터뷰다.
극영화인 ‘인어공주’도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영화를 봤나
안그래도 작년에 이어공주 시나리오를 쓴 송혜진씨를 만난 적이 있는데 ‘엄마’이야기를 하더라. 어찌 보면 구질구질할 수도 있지만 그게 현실에 존재하는 가족의 모습인데 ‘인어공주’는 더 세련되게 포장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
류 감독은 ‘인어공주’를 보면서 어땠나
누구나 ‘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점점 엄마를 닮아가게 된다. 그걸 스스로 느낀 게 아니라 과거로 돌아가서 나와 같은 과거의 엄마를 느끼게 되는 게 좋았다. ‘인어공주’의 백미라면 우리 엄마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참 재밌게 봤다.
‘인어공주’와 ‘엄마’의 다른 점이라면
또 엄마를 통해서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되는 데 그게 어려서부터 보고자란 게 자신의 바운더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결혼 6년차에 접어들었는데 부부싸움을 할 때 ‘굳이 피곤하게 사소한 것을 따질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하은이(류 감독의 큰 딸)가 나보다 더 나은 출발선에 서길 바란다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어공주의 나영은 아직 결혼을 안했으니까 피하고 싶은 마음이 많고 아직 생활에 발을 디딘 것은 아니다. 그에 비해 나는 결혼한 엄마로서 생활속에 더 발을 담궜다고 해야할까.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
여성영화제를 하면서 전국 상영을 했는데 개인적으로 힘을 얻는 계기였다. 나만, 우리 가족만 그런 줄 알았는데 대부분이 나와 비슷하더라. 영화에 대해서 평을 하기보다는 같이 사는 이야길 하는 게 좋았다. 어떤 분들은 ‘결혼 5년차니까 이정도로 이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셔서 좋았다.
여성의 전화에서 순회했을 때는 관객들이 다들 기혼여성들이니까 훨씬 더 잘 이해하는 편이었다. 다들 한 번쯤 결혼후 좌절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서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서 이야길 해주시는 데 어떤 분은 “엄마가 아저씨랑 사는 것보다 그냥 사귀는 게 좋다‘는 조언도 해주셨다.
하지만 극장 상영때는 영화의 완결성에 대한 신랄한 평이 더 많았다. 극장에 돈내고 와서 보는 거니까 독립영화라고 더 마음을 채워서 보는 게 아니라 영화의 미숙한 점을 날카롭게 지적해줬다.
가족들의 평가는 어땠나
세재 언니는 강도가 약하다고 하고 큰 언니는 엄마 보여주지 말라고 하고 엄마는 담담하더라. 오빠는 실망을 많이 하고. 오빠는 가부장 전체를 다뤄주길 바랬던 거 같다.
오빠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지만 이게 영화니까 주인공인 엄마의 연애를 반대하는 오빠는 안티 주인공의 역할을 하게 된다. 영화속 캐릭터는 한정될 수 밖에 없으니까 오빠에 대한 진실이 왜곡되게 보일 수 있는 게 미안했다.
가족들이 카메라앞에서 굉장히 자연스러던데
98년에 워크샵으로 단편을 만들 때 우리 6남매를 담은 적이 있다. 그때 가족들에게 상영해보니 좋아하드라. 그래서 틈나는 대로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4-5년이 지나니까 이젠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길 바라나
누가 이 영화를 보고 자기도 자기 이야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는데 그게 최고의 찬사였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되는 것, 내 영화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