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감독 류미례
“당신이 처음도 끝도 아니다.
삶은 계속된다.”
입장하기 전에 줄을 서 있는데 내 옆에 가족으로 보이는 어린애를 안은 여자와 남자가 있었다. 나는 그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입장을 하면 아이 때문에 조용히 영화를 볼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슬슬 걱정이 되었다. 행여 내 자리와 그 가족의 자리가 가깝기라도 하면 완전히 낭패였다. 그들이 내 옆이나 뒤에 앉지 않기만을 빌며 들어가 자리에 앉았는데...
이런, 극장 기획자가 소개하는 영화 <엄마>의 감독이 바로 아이를 안고 있던 여자였다.
류미례 감독은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함께 우리 삶을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감독이 앞에 서서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동안 그녀의 어린 딸은 엄마의 손을 잡아당기며 엄마의 오른쪽으로 갔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하며 엄마를 가만 놔 두지 않았다.
그건 색다른 광경이었다. 남자였다면 아이가 그럴 때 아마 십중팔구 부인이나 여직원에게 아이를 맡겼을 게다.
영화가 시작되고 이번에는 영화 속에서 그녀가 말을 했다.
“아이를 낳게 되면서 일을 할 수 없었다. 지금 아이를 등에 업고 할 수 있는 작업은 엄마를 찍는 것뿐이었다.”
그 대목에선 먼저 나 자신에게,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 세상에 한숨이 나왔다.
누구든 이 영화를 보면 자기 삶의 어떤 조각과 닮아 있는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사람마다 그 조각이 다를 테지만 어쨌든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는 우리 삶의 진실이다.
대를 이어 들러붙는, 고달프고 모욕을 피할 길 없는 여자의 인생살이.
그럼에도 단호하게 내 딸은 이렇게 살지 않게 하겠다며 꿋꿋이 살아가는 그녀들.
그들의 고통은 처음도 끝도 아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 또한 계속된다.
감독의 바람대로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내 삶과 우리의 고통을 들여다보았다.
나의 고통이 처음도 끝도 아니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나의 노력도 계속되어야 한다.
이래서 이 영화의 뒷맛은 따뜻하다.
영화가 끝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니 감독이 가족과 함께 서서 극장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감독에게 영화가 좋았다고 잘 보았노라고 인사를 한 마디 건네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올 것 같아서 잠깐 쳐다보다가 그냥 나왔다.
이 영화를 혼자 조용히 보면서 흐느껴 울다가 두 주먹을 꽉 쥐며 나와도 좋고
형제자매와 함께 보고 나서 이런저런 속 이야기를 나눠도 좋고
엄마와 함께 보고 나서 별말은 않더라도 맛있는 저녁을 사 드리는 것도 좋고
친한 친구와 함께 보고 나서 술 한 잔 기울이며 마음 밑바닥에 묻어 놓았던 납덩이를 털어 내는 것도 좋고
남편과 아내와 함께 보고 나서 우리 잘 하자고 서로를 다독여 주어도 좋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