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엄마와 다른 인생을 꿈꾸며(위민넷) |
엄마와 다른 인생을 꿈꾸며
류미례 감독 다큐멘터리 "엄마..." 감상기
글 / 이동옥 (nature68@women-net.net)
위민넷 기자회원
감독의 자전 다큐멘터리 <엄마...>는 가족, 그 가운데서도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지난 2003년 서울여성영화제 옥랑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감독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그대로 담아 더욱 설득력이 있고 감동적이다. (전문)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가족들은 엄마가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홀로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엄마를 모성이 아닌 성욕을 가진 존재로서 바라보는 것은 왜 불편한 것일까. 아들의 입장에서는 엄마가 다른 남자의 소유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어머니가 아버지 외의 다른 남자에게 욕망을 갖는다는 건 집안망신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박을 하고 폭력을 일삼으면서 생계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한 아버지가 6남매를 남기고 떠난 이후, 자녀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평생을 고생하신 어머니는 이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자녀들은 다 컸고 결혼을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엄마가 엄마 이외의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감독인 딸은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엄마가 손녀 하은을 봐줬으면 하지만 엄마는 이제라도 인생을 즐기고 싶어 한다.
술주정이 심하고 춤추기 좋아하는 감독의 엄마는 우리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상적인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과 자녀들의 생존을 위해 살아왔다. 지금도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는 경락마사지를 하는 아저씨를 만나 애틋하고 따스한 감정을 주고받고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건 엄마에겐 소중한 경험이다. 젊은 시절의 만남처럼 결혼이라는 형식적인 틀을 기대하지 않지만 엄마는 좋아하는 아저씨와 같이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저씨는 자신의 가족들에게 엄마를 여자친구라고 소개하지 못하는 등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엄마는 아저씨와 함께 러시아여행을 함께 하기를 바랐지만, 아저씨는 마지막에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동행을 거절한다. 엄마는 섭섭해 하면서도 딸인 감독과 함께 셋째 딸이 있는 러시아로 떠난다. 러시아로 떠날 때 감독은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일과 양육을 병행하기 어려웠던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것을 원치 않았고 착잡했다.
러시아에 사는 감독의 셋째 언니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딸이자 자랑스러워하는 딸이다. 언니는 신문에 날 만큼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였다. 셋째 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대학에 다녔고 러시아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재원이었다. 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몇 번의 휴학을 하면서도 대학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언니는 러시아로 떠나기 전에 형부와 헤어졌다고 생각했지만 형부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러시아로 찾아왔고 그렇게 두 사람은 행복하게 러시아에서 사랑의 결실을 이루었다.
그러나 언니는 지금 행복하지 않았다. 언니는 두 딸을 양육하기 위해 학업을 접어야만 했고 자신의 꿈을 접었다. 그렇게 총명하던 언니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집에 머물면서 때때로 러시아인들을 대상으로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언니가 원하던 삶에서 멀어져 있지만, 언니는 자신의 삶에 안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엄마와 두 딸들은 옛날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다른 가족에 비해 얼마나 사랑에 굶주려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감독은 자신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 남편을 지나칠 수 없었고 결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결혼 이후 자의식을 갖고 생활하려던 언니와 감독은 임신과 출산에 부딪히면서 힘겨워하고 있다. 자신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생각한 언니는 두 딸들에게 충실하고자 노력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자신과 똑같은 잘못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엄마와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했고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엄마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여자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분노하고 좌절한다. 결혼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언니의 삶은 우리에게 여성으로서 아픔과 화두를 던져준다.
가난한 가족사 안에서 어머니, 나, 딸이라는 3대에 걸친 이야기가 감독의 시선을 따라 때로는 아프고 슬프지만 따스하게 다가온다. 여자들이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그녀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당하지 않고 남자와의 관계에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그녀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여성의 삶의 방식이며, 그녀들의 삶의 변화는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남성과의 협상 속에서 제도화와 의식의 변화 속에서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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