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2003 서울여성영화제 옥랑상 작품 엄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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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사
2003 서울 여성 영화제 옥랑상 작품 '엄마'
엄마와 여자 사이
양중모(mojungy) 기자
3월 6일,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상업 영화 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를 섭취해야 한다는 친구의 강력한 주장에 정말 오랜만에 단편영화를 보러 갔다. 언제나 그렇듯 상업 영화가 아닌 것들은 내 관심 밖에 있기에 오늘 보는 영화도 단지 제목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심지어 '봄이 오면'과 '엄마'가 각기 다른 작품이 아닌 ‘봄이 오면 엄마’라는 하나의 작품인줄 알았다.
제일 처음 접한 단편 영화가 충격적이어서 구토가 날 뻔한 적도 있었기에 여전히 단편 영화는 내게 다소 두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늘 먼저 가서 대강의 내용이 담긴 전단지를 확인하곤 한다. 2003 서울 여성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그 말 한마디로 별다른 두려움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 상영을 기다릴 수 있었다.
솔직히 ‘봄이 오면’은 맨 마지막에 가서야 할머니 두 분이 자매라는 것을 알았을 만큼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 영화는 '엄마'라는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대략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가족'같은 류의 영화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뻔한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가볍게 빗나갔다. 감독은 자신의 얘기이자 자신의 어머니 얘기임에도 결코 억지 눈물을 강요하는 듯한 영화를 찍지 않았다. 이것이 다큐 형식인 것을 감안해도 아니 오히려 다큐 형식이기에 도리어 더 강하게 눈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음에도 감독은 그러한 유혹을 뿌리친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그러한 의도가 전혀 없었던지 정말 적나라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춤추는 어머니, 술을 먹고 자식에게 마구 화를 내는 어머니 등 애당초 내가 기대했던 자애가 넘치고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 상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게다가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육남매를 키웠는데 큰 딸이 어머니에게 서운함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엄마는 정이 없으셔. "
영화 내내 엄마라는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서 늘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엄마의 자애 이미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냉정하게 엄마를 평가하고 딸들이 바라보는데도 이상하게도 내 마음 속에는 '가족'을 보았을 때보다 더 찡한 가슴 속 덩어리가 생겼다.
러시아에 살고 있는 감독의 셋째 언니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 가족은 사랑할 줄 몰라. 관심 받고 싶어 하면서도 줄 줄 몰라."
셋째 언니가 말할 때 이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엄마의 눈물이 카메라 속에 담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장한 어머니상을 두 번이나 탔다는 건 그만큼 자식을 잘 키우고 싶다는 강한 욕심이 있었던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자식들의 기억 속에 자식들이 아프면 욕부터 하고 봐서 서운했다는 감정이 더 컸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엄마는 여자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엄마 역시 사람이고 자신의 삶이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엄마라는 위치가 이전에 보아왔던 수많은 영화에서는 무작정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입장이었지만, 이 작품에서 엄마는 엄마를 촬영하는 자식이 엄마가 되어 촬영하는 것인 만큼 엄마이면서 동시에 여자이고 싶은 마음이 같이 담겨있다.
10년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눈앞에 두고서도 자식 때문에 공부를 포기해야 했던 셋째 언니, 그 언니는 이런 말을 한다.
"공부할 때 애들이 방해되지. 그래서 참 귀찮고 싫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우리 엄마가 나한테 그런다면 참 싫을 것 같아."
난 그서야 이 작품이 왜 여성 영화제에서 수상작으로 채택되었는지, 그리고 여자친구들이 늘 말하던 남녀평등에 대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한 여자로서의 삶을 살고 싶은 욕구와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을 차마 거부할 수 없어 엄마로서의 길을 택해야 하는 갈림길 사이에서 많은 여성들은 엄마의 길을 택한다.
그리고 후자의 길을 택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꿈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언니는 지금 모습에도 만족한다고 말하지만 감독은 그게 끝이 아니길 바란다고 말한다. 셋째 언니가 꿈꿔왔던 길을 계속 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이전의 모든 영화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나 어머니의 무한대적인 사랑을 그려 눈물을 자아냈다면 이 영화는 내게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한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을 느끼게 했다.
엄마 이기전에 사람인대 어찌 항상 무한대적 사랑만을 퍼부어주겠는가.
세련된 맛은 물론 적지만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그려냄으로서 이 영화는 이미 성공했다고 본다. 아직도 여성에 대한 이해가 낮은 나를 그래도 결혼 한다는 것이 꿈을 꾸는 여성에게 얼마나 큰 짐인지를 이해하게 노력하게 만들었으니까 그것만으로 큰 성공 아니겠는가.
비록 관객은 적었지만, 울림은 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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